"너는 가출도 집을 지어놓고 할 사람이야. "
언젠가의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가출도 집을 지어놓고 할 사람이야."
나는 그때 그 말을 흘려 들었었다.
하지만 삶을 살면서 그때의 그 누군가의 말이 내 폐부를 찌르고 있는 중이다.
해외여행을 준비 중이다.
고작 얼마 안 되는 며칠의 여행이다.
비행기로 걸리는 시간도 고작 몇 시간뿐이다.
가봐야 내 껌딱지 둘을 끼고 가는 여행이다.
물론, 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여행을 싫어라 한다.
하지만 간다. 가야 한다. 애들 때문에.
나는 부모니까.
그래서 여행을 계획한다. 심지어 불안도가 그리 올라갈 일도 아닌
패키지여행이다.
뭐 따지고 보면 패키지여행이 그렇게 싸지도 않다.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들이 부지기수,
그래도 일단, 맨땅의 헤딩보다는 안내받아 가는 게 더 낫겠지 싶어
해외여행을 준비 중이다.
예매를 했다.
모집 인원이 덜 찼다며 취소됐다.
그래서
금액을 더 올려 다음 주로 다시 예약한다.
호텔이 한 등급 다운그레이, 금액은 명당 15가 더 올랐다.
뭐 그래도 꼭 가야 하니까. 일단 예약을 다시 했다.
로밍 걱정에
카드 걱정에
환전 걱정에
준비물 걱정에
빼곡히 적힌 준비물 다이어리에
한 개씩을 체크해 가면서 꼼꼼히 준비한다.
당황하는 게 싫어서다.
그리고 이제 카드를 준비해 본다.
쓸 수 있는 카드는 죄다 만들었다.
토스, 신한 쏠 트레블, 하나은행 트레블 로드, 트레블 월렛,
덕분에 트레블 월렛 카드를 gs 편의점 atm기에서 발급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2분 컷이다.
atm기 앞에서 카드 기다리며
나도 빨리 늙고, 세상도 빨리 변함을 느꼈다.
대한민국만 그런 건가?
이어 매일매일 하나씩의 통장에 적정의 금액을 환전한다.
4개의 통장에 똑같은 금액으로,
카드 위에 수수료가 무료인 atm기를 기록해 둔다.
그래도 걱정이다. 왜냐면?
바꾼 패키지의 인천공항 출발 비행기 시간이
아침 7시 30분이다.
너무 싫다. 정말 싫다.
왜냐면 늦잠 자서 비행기를 놓칠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1시 10분 비행기가 있는 패키지를 예약했으나,
모집객이 인원 미달이라 취소 됐으니 이건 어차피 운명이다.
어쩔 수 없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5시 30분까지
공항에 모여야 하는 스케줄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니 벌써부터 두렵다.
여권 지갑을 산다. 그리고 여권 지갑을 담을 앞으로 매는 작은 가방도 산다.
가끔 카페에 올라오는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가방을 차에 두고 내렸어요 하는 글들을 보면서 글쓴이들이 느낄만큼의 공포를 느낀다.
우비도 산다. 튼튼한 걸로, 젖어서 힘들었다는 누군가의 후기를 읽으며
그렇게 지금 여행 준비는 진행 중이다.
혼자 자유롭게 여기저기 해외를 돌면서 글을 쓰는 누군가가 있다.
내가 부러운 건 그 누군가의 자유로움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다.
완벽하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는 그 누군가의 여유로움이다.
나는 완벽주의자에 불안도가 초 상극에 이르는 사람이니까.
생각해보니
내게 그 언젠가의 '그'가 또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받는 스킬이 없구나."
그랬다. 나는 퍼주기만 잘하고, 뭔가를 받는 걸 되게 어려워하는 인간이었다.
그가 내게 던졌던 말들이 새록새록 새삼 뼈속깊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아직 여행은 끝내지 않았다.
준비의 설렘이 아닌 준비의 고통이 ~ing 중이다.
-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