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살다가 한 번은 코토히라에

기꺼이 중력을 거스르게 하는 힘이

by Luxyuri

스페인에는 산티아고에 순례자의 길이 있다면, 일본에는 시코쿠에 순례자의 길이 있다. 시코쿠 전역에 있는 88개의 신사를 순례하는 오헨로라는 순례자의 길이다. 그중에 코토히라궁은 콘피라신을 모시는 시코쿠 신사의 총본산 격이다. 전국에서 순례객이 모여드는 신사, 그중에도 대장이라고 하니, 88개의 신사를 다 가 보지는 못해도 이건 꼭 가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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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무거운 다리를 끌고 돌아오게 되는 곳이다. 사실 이곳은 785개 계단을 올라야 본궁을 볼 수 있고, 1,368개의 계단 올라야 내궁을 볼 수 있는 신사이다. 가는 데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막상 올라보니 중간중간 볼거리가 많아서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다음 볼거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숲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 어우러진 신사의 시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묘한 분위기가 점점 높은 곳으로 순례자들을 빨아들인다.


정신 팔려 오르다가 허리가 꺾일 때쯤 올라온 길을 돌아보면,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푸른 사누키 평야가 저 멀리까지 펼쳐진다. 내 몸이 있는 산속 숲길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의 괴리감에 잠깐 현기증이 느껴지도 한다.


그때 마침 지나가던 중년 부부가 그날의 저녁 메뉴에 대해서 얘기한다.

“역시, 우동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점심도 우동이었잖아, 더는 못 먹어, 당신 혼자 먹어”

진심으로 우동에 화가 난 우동현 관광객의 사치스러운 불만에 피식 웃음이 나서 정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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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을 모두 오르면, 오히려 현실감이 돌아오게 하는, 정돈된 신사의 본궁이 자리하고 있다. 기대감으로 가득하던 보물 찾기를 하다가, 누군가가 1등이라고 적힌 쪽지를 찾았다는 소리에 김이 새는 것 같은 고토히라궁의 순례길은 기꺼이 중력을 거스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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