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이상 - 2

by 루이덴

-서연-


바쁜 일주일이 지나가고 토요일이 왔다. 2주간의 출장을 끝내고 귀국한 재우를 만나는 날이었다. 서연은 멀뚱히 누워 자신의 방 천장을 바라보다가 아직까지 떼지 않고 붙어있는 야광 별 스티커를 발견했다. 이미 그 빛을 잃은 지 오래라 아무리 깜깜한 밤에도 빛나지 않는 야광 별. 하지만 왜인지 떼고 싶지 않았고 그 자세 그대로 힘껏 기지개를 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침구를 정리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화장실로 향했다.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샤워까지 야무지게 끝낸 뒤 화장대에 앉아 시트팩을 붙이기 시작했다.


관리에 언제나 진심인 희연이 추천한 팩인데 선물 받고 이제 두장째 쓰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썼을 때 도 재우와의 데이트 날이었던 거 같은데? 생각하며 얼굴에 팩을 붙인 채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평소 같았으면 대충 수건으로 털어 말리고 자연 건조라면서 방치했을 텐데, 서로 스케줄이 안 맞은 데다가 재우가 장기 출장까지 다녀오면서 약 한 달 만에 만나는 날이기에 오늘은 평소와는 달랐다. 롤빗을 꺼내 드라이어와의 합을 잘 맞춰 머리를 조심스럽게 말아주었고 헤어 퍼퓸도 살짝 뿌렸다. 향수를 뿌리지 않는 서연의 유일한 향 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옷장을 열어 꽃 자수가 새겨진 블라우스에 랩 스커트를 꺼내 입고 언젠가 직접 만들었던 비즈백을 챙겼다. 지갑, 핸드폰, 그리고 또 뭘 챙겨야 하지? 생각하며.


-너 진짜 같이 안 가도 돼? 우린 괜찮은데


팩을 떼고, 수분 크림을 덧바르고, 선크림을 바른 뒤 립글로스만 살짝 얹은 얼굴을 거울로 확인하며 희연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 대신 메시지를 남기고 재우에게 전화했다. 쌍둥이지만 참 다른 둘. 서연은 신호음을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날씨도 좋고, 외출하면 참 좋을 텐데.


겉모습은 본인보다 화려한 쌍둥이 여동생 희연은 신기하리만치 집순이었다. 본가에서 같이 살 때 도 늘 밖에서 노는 자신의 방은 그저 책상과 침대뿐이었고 그마저에도 별다를 게 없었다. 오래된 나무 책상 위에는 영수증 쪼가리나 머리끈 같은 게 굴러다녔고 침대 역시 하얀색의 침구가 아무렇게나 개어져 있거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와 달리 희연의 방은 책도 많았고 스케치북도 많았고 컴퓨터도 항상 켜져 있었다. 연예뉴스라던지 누군가의 블로그라던지가 항상 띄워져 있는 건 물론이었다. 가끔은, 방에 아무것도 없어서 자신이 나가 노는 건지도, 방에서 할 게 너무 많아서 희연이 안 나가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재우가 전화를 받았고, 출발했냐고 물어보았다. 재우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영화까지 시간이 있으니 일단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희연이는 온대?라고 재우가 물어봤고 서연은 물어는 봤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대답한 재우는 전화를 끊었서연은 핸드폰을 확인하였지만 희연에게서는 답장이 없었다. 진짜 일정이 있나? 그럴 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재우는 해가 뜨거운 나라를 다녀와서인지 조금 타 있었다. 선크림 잘 바르라니까, 가볍게 타박을 하고 재우가 미리 시켜둔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치즈 케이크를 자연스럽게 먹었다. 재우는 서연과 희연이 같이 아는 대학교 동아리 선배가 자리해 준 소개팅에서 만나게 되었다. 눈만 마주치면 사랑에 빠지던 서연은 재우와의 첫 만남에서도 바로 사랑을 느꼈다. 스포츠맨 같은 외형과 다르게 재우는 꽤나 신중한 성격이었고 애프터도 사귀자는 말도 서연이 먼저 했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재우도 조금씩 표현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잘 만나고 있었다.


둘 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위에서는 슬슬 결혼 얘기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지만 서연과 재우는 아직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희연이 연애에 관심이 없는 만큼 서연은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연애의 완성의 결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끔 데이트 중 지나가는 아기들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재우를 보고 있노라면 그를 닮은 아기가 있다면 어떨지, 그리고 아이와 놀아주고 있는 재우는 어떤 아빠가 될지가 궁금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아마 프러포즈도 서연이 먼저 해야 할 텐데, 서연 본인이 크게 생각이 없어서 진도가 안 나가겠구나 생각했다.


영화는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고 귀여운 주인공 커플의 꽁냥 거림이 재미있었지만 왜인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한 번 물꼬를 튼 결혼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 탓이다. 고개를 돌렸을 때 재우는 졸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저녁 귀국해서 시차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겠지. 밤에 잠이나 제대로 잤으려나? 갑자기 갑자기 너무 바로 만나자고 한 자신이 배려가 없었나 싶어 미안해졌다. 영화가 끝난 뒤 재우는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피곤한 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날씨도 좋고 생각도 정리할 겸 걸어가겠다고 대충 대꾸했다.


그래? 하며 재우는 기지개를 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시선을 하늘에 둔 채 저녁 먹겠냐고 묻는 사람처럼 너무나도 가볍게 물어보았다.


"우리 결혼할까?"


그 순간 서연은 갑자기 중력을 느낄 수 없었다. 우주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선선한 어느 토요일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이 세계에 재우와 서연만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이전 08화동면이상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