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연 -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과 공간인 점심시간의 구내식당. 희연은 얌전히 줄에 서서 좋아하지 않는 청국장은 받지 않고 돈가스와 밥, 시금치나물과 단무지를 받아왔다. 종류별로 나와있는 김치 코너는 슬쩍 눈길만 줬다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무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근데, 나 너무 궁금해. 너는 대체 왜 연애를 안 해?”
희연이 아직 자리에 앉기도 전에 들어온 질문에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했다. 현재 열렬히 사랑 중 인 서연으로선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며. 연애라는 게 마치 희연이 원하기만 하면 손쉽게 이룰 수 있는,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묻는 서연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연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시금치나물을 뒤적이던 세희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둘이 똑같이 생겨서 어쩜 그리 다른가 몰라.”
똑같이 생겼다. 희연과 서연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었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2분이 채 차이 나지 않는 일란성쌍둥이 자매인 그들은 적당히 통통한 몸무게로 태어나 10대 시절까지만 해도, 얼굴만 보고 그 둘을 완벽히 구분해 내는 사람은 부모님 외에는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교복을 벗고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생기게 되면서 이젠 제 3자도 그들을 쉽게 구분해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투명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처음 보는 사람과도 쉽게 말을 트고, 공감대를 끌어내며 금방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언니 서연과 언제나 완벽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끌지만 무심하고 말주변 없는 성격으로 금세 존재감을 잃는 희연은 사실 매우 다른 존재들이었다.
“아무튼 간에,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주던지!”
시답잖은 말과 함께 어느새 밥그릇을 비운 세희가 말했다. 과하게 말린 앞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아우 배불러, 하며 수저를 내려놓는 그녀를 보며 옆에서 서연도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세희야말로 전형적인 미인형의 얼굴을 지녔기 때문에 진짜 준다고 하면 과연 자신의 얼굴과 바꿔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연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슬쩍 서연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데 거울이 없고 서연이 있을 때 종종 쓰는 방법이었다. 서연과 희연 자매는 적당히 하얀 피부에 머리숱이 많아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는 하지만, 눈에 띄게 예쁜 얼굴이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유튜브에서 모공 줄이는 방법 같은 걸 검색하고 하지도 않을 운동 영상을 다음에 볼 영상 리스트에 저장해 두는 보통의 사람들. 식판을 반납하며 뒤에 따라오는 서연과 세희에게 희연은 말했다.
“연애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관심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도 없어.”
희연의 대답이 뭐가 웃기는지 서연과 세희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들을 뒤로한 채 구내식당을 나와 식후에 항상 들리는 카페로 향했다. 그들에게 한 말 그대로 희연은 연애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 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호르몬이 날뛴다는 10대 시절에도 짝사랑의 열병에 시달려 본 적이 없었다. 반면 그 시절의 서연은 눈만 마주치면 사랑에 빠지는 것 같았다. 어제는 등굣길에 마주친 학교 선배였으며 오늘은 같은 학원을 다니는 옆 학교 남학생이었다. 내일은 또 누구와 사랑에 빠질지 그녀 본인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서연을 바라보며 희연의 마음속에는 과연 그런 게 사랑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둘은 달라진 게 없었다. 서연은 하루가 멀다 하게 소개팅이요 미팅을 나가 사랑에 빠지고 허우적대며 꾸준히 상대를 찾았고 희연은 서연이 나가있는 시간만큼 보상이라도 하는 양 자신의 내면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토요일에 재우 오빠랑 영화 보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
어느새 희연을 따라잡은 서연이 팔짱을 끼며 물어봤다. 고개를 돌려보니 세희는 외부 흡연실에 들어가 있었다. 입사동기인 세희는 작년까지만 해도 비흡연자였다. 전 남자친구인가 현 남자친구인가 때문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얘기를 전해 들었던 것도 같지만 희연이 잔소리할 일은 아니었기에 자신의 팔에 매달려있는 쌍둥이 언니에게로 다시 관심을 돌렸다.
“내가 아무리 연애에 관심이 없다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커플 데이트에 낄 정도로 무지하진 않아.”
“토요일에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런 이유라면 걱정 말고 같이 가자!”
“아니, 어차피 일정 있어서 안돼.”
거절하는 희연을 서연이 아주 의아하게 쳐다봤다. 마치 네가 언제부터 주말에 일이 있었냐는 듯한 표정으로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사실 아주 자주 희연은 서연이 주말 나들이를 제안할 때마다 없는 일정을 만들어내서 거절하곤 했다. 본가에서 독립해 나와서 살고 있는 희연을 서연은 어째서인지 굉장히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처럼 생각했고 어떻게 해서든 주말마다 끄집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정말로 일정이 있었기에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정당한 거절의 사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