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보다 작은 마을이 좋아

요코하마, 그 언덕에서 바라본 유난히 빛난던 밤1

by 빛결

라떼는 대학교에서 일본어과, 중국어과가 인기 있는 학과였고,

어문계열에 대한 로망이 지금보다 훨씬 강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일본어과는 아니었지만,

어느 날 우연히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하얀 설원 위에서

“오겡키데스까?”를 외치던 여인의 장면은

마치 화면 너머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것 같은 감정을 건네주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 온 일본이 맞나?’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일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 궁금증은 ‘오겡키데스까?’라는 말에 스며 있었고,

나는 그 한마디에 이끌려 일본어 공부에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까지 취득하게 되었고

일본어를 사용해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자라났다.

그리고, “언젠가 일본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구체적인 상상으로 이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운 좋게 서울 시청에 본사를 둔 여행사에 취직했고

3개월 수습을 마치자마자

바로 도쿄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꿈꾸던 일본 생활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고,

그 낯섦조차 설레었다.

낯선 환경이 익숙해져 가는 모든 과정들이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 같았다.

기숙사에서 회사까지 가는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던 것,

외국인 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던 날,

일본 은행에 계좌를 만들고,

소니 노트북을 처음 구입하며 설렜던 기억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매일이 모험 같았고,

그만큼 즐거웠다.


하지만, 상사와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집과 직장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익숙해져 가던 일본 생활 속

예고 없이 찾아온 향수병은 생각보다 깊고 아팠다.


그때 나는 그 남자를 만났다.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감싸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그때

나에게 다가와준 일본인 남자친구

나의 부족한 말에도 귀 기울여주고

말보다 표정과 행동으로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다.


그와의 첫 데이트 장소는 요코하마였다.

그는 나를 요코하마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로 데려갔다.

잔잔한 음악이 들리는 듯한 풍경.

그곳에서 바라본 요코하마의 야경은

지금까지 봐왔던 아름다운 빛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듯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 순간,

나는 내 20대의 정점을 찍고 있다고 느꼈다.

꿈꿔왔던 일본 생활,

그리고 외국인 남자친구.

로망이 모두 실현된 그 밤의 기억은

아직도 나에게 ‘젊음’이라는 단어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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