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여행 Jul 2016
가족과 함께한 흔치 않은 여행지로의 선택. 두 번째 유럽 주재원으로 유럽에 산지 8년이 되는 나에겐 연중 가장 큰 가족여행인 여름 휴가지를 고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교민이 아닌 신분이라 정해진 근무기간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주재원들은(특히 유럽에 사는 주재원과 가족들에겐 여행지가 많은 유럽은 선호지역일뿐더러) 주재기간 동안 어떻게든 많은 곳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우리 가족도 8년 동안 많은 유럽지역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다. 덕분에 내 방 한쪽 벽 유럽지도엔 안 가본 나라가 손에 꼽을 만큼 많은 도시가 색칠되어있다.
처음 발트 2국을 여행지로 택한 것은 유럽에서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곳은 안 가본 곳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과거 소련연방이었지만 현재 내가 사는 나라인 슬로바키아와 동일한 해에 EU에 가입했고 같은 유로를 사용하며 크게는 슬라브족의 나라인 이 나라들이 슬로바키아와 뭔가 비교될게 많은 곳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발트해에서 보석인 호박을 쉽게 주을 수 있다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발트해에 가자고 졸랐던 9살짜리 딸아이의 조그만 바램도 있었다.
이렇게 가게 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란 나라는 상상 이상의 아름다움과 멋진 자연을 간직한 나라들이었다. 주변 대부분 사람들이 나라 이름조차 생소해하던 이 나라들은 내가 가본 곳 중 3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가 볼만한 문화와 여행의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우리 가족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곳은 대자연과 외지인에게 관광자원으로 보여줄 만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경제적으로(주로 식당이나 특산물 등의 물가 수준으로 고려 시) 여행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을 최고로 치는데 바로 그런 선호에 아주 부합하는 여행지가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이다.
여행 가이드라기 보단 찍었던 사진위주로 나의 짧은 감상을 적고자 한다. 와이프는 항상 나의 사진 찍는 실력을 못마땅해 하지만 우선 내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을 가지고 글을 작성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빌니우스 시민들이 휴식처이면서 큰 대로인 Gedimino 거리와 이어져 있는 대성당 광장, 발트국가들의 종교상 특이한 점은 리투아니아는 역사적으로 폴란드와 밀접하고 폴란드처럼 카톨릭국가인 반면 라트비아는 개신교와 러시아 정교가 주요 종교이다. 라트비아 특히 리가에 러시아 사람이 도시 구성의 30% 이상이나 된다니 그럴 만도 하다. 암튼 작은 나라들이지만 종교적 차이가 확연하다.
빌니우스 시내 조그만 개울 건너 예술가 마을인 98년에 개국? 한 우주피스 공화국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의 헌법엔 행복하거나 그렇지 않을 권리. 사랑할 권리. 자유로울 권리 등 41개 헌법 조항이 일본어 중국어등 세계 각국어로 새겨져 있었다. 우리말이 없단 게 아쉬웠지만 진정 인간적인 삶을 이곳에선 마음껏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Galve호수에 떠있는 Island castle을 관광용 보트로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정말 고요하고 멋진 자연 한가운데 있는 붉은색 성이었다.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한가운데 있는 성당과 느낌이 유사했다. 그곳도 경치가 아름다워 유고슬라비아의 독재자였지만 아직도 많은 그곳 국민들은 사랑? 하고 그리워하는 티토가 별장을 지었던 곳이다. 그 호수에선 사공이 직접 노를 젓는 조그만 배에 탔었는데, 아름다운 호수 안에 있는 문화유산들은 특히 날씨가 좋은 날에 가면 너무도 아름다운 곳에 와 있구나 하는 여행의 색다른 감동을 주는 곳들이다.
와이프가 사진 예쁘게 나올 것 같다고 알려준 가게 앞에서 작품을 연출하고자 찍은 사진이었는데 가게도 멋지지만 안에서 파는 도자기 집들도 예쁘고 가격도 훌륭했다. 파는 물건은 리투아니아뿐 아니라 라트비아 유명한 건물들도 팔고 있어서 며칠 후에 가 볼 리가의 삼 형제 집 도자기를 거기서 샀다. 가게 여주인 말론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나 가옥 모양이 아주 흡사하단다.
호박은 발트해가 예전엔 육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물 같은 것이었다. 소나무 송진에서 만들어지는 호박. 즉 발트해가 전엔 육지였고 소나무가 많았단 이야기겠지. 그리고 호박은 흔히 생각하는 투명한 호박보다 사진처럼 투명하지 않은 것이 더 비싸다고 한다. 마지막 이틀 동안 머물렀던 리투아니아 팔랑가 해변에도 역시 소나무가 많았고, 그곳 바닷가에서 실제로 작은 호박을 몇 개나 주웠다. 정말 호박이 바닷가에 있았던 것이다. 딸아이는 이 박물관에서 호박 목걸이를 드디어 샀다. 박물관이라 그런지 전날 트라카이성에서 팔았던 호박보단 비쌌지만 그래서인지 박물관의 예쁜 점원 아가씨가 직접 품질보증서 같은 것에 싸인하고 도장까지 찍어 주었다. 이 보증 서론 아마도 어디 가서 감정을 받아 볼 수는 없겠지만 공식적인 보증서를 써주는 모습에서 아 그렇지. 호박도 주얼리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암스테르담에 여행 가서 온갖 카드를 다 동원해 덜컥 다이아몬드 반지를 와이프에게 사주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딸에게도 호박이란 보석 목걸이를 사 주었군. 훗. 암튼 그 다이아몬드 반지는 지금껏 내가 산 물건 중 집과 자동차 다음으로 가장 비싼 물건이었는데 지금 집과 차는 팔아서 없는 것을 생각하면 다이아몬드 반지는 역시 보석이라 마지막까지 남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딸아이 호박 목걸이도 다이아몬드 반지만큼은 아니라도 잘 간직해 주길 바래본다. 물론 예쁜 리투아니아 아가씨가 정성껏 써 준 품질보증서도 같이.
룬달레 궁전은 발트에서 가장 보존이 잘된 아름다운 궁전이라고 가이북에 나와 있다. 물론 유럽의 웬만한 궁전들이 다 그렇듯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였다. 참고로 한글로 된 볼만한 발트 여행 책자가 없어서 Lonely Planet이란 여행서를 이용했는데 지도도 잘 나와 있고 잘 만든 여행 가이드북인 것 같다. 이 책을 번역해서 한글판으로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생각해 보았다. 룬달레 궁전에서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로잡은 곳은 장미정원이었다. 조그만 기차에 타 설명을 들으며 가는 작은 정원 투어 기차에 올랐는데 2만 여종의 꽃이 9월까지 번갈아 핀다고 하니 장미만도 정말 다양한 종류가 다양한 시기에 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무엇보다 이 넓은 정원을 관리하기가 참 쉽지 않겠단 생각과 함께 그 날만 해도 약 20여 명의 사람들이 정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역시 아름다움을 유지하기엔 관리와 수고가 필요하다. 정원 투어 가이드 말론 이 궁전이 소련 시절엔 병원이나 학교로도 쓰였고 정원도 모두 망가졌었는데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시 아름다운 정원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음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인간의 수고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 발하게 하는구나! 이후 여행에선 사람의 손이 덜 닿아서 아름다운 자연의 원시림도 보게 되었다. 정원이란 자연을 이용한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반면에 대자연 그대로 웅장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느껴졌으니 이 발트국가들은 작지만 너무 많은 것을 가진 풍요로운 땅이 아닌가 싶다. 물론 아픈 피정복의 계속되는 역사를 가졌었지만 말이다.
시굴다성에서 본 자연의 아름다움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자연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작은 나라의 거대한 국립공원 가우야 국립공원. 정말 발트 여행자는 꼭 가보아야 할 곳.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많은 레저 스포츠도 잘 발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즐길거리들. 이름도 타잔이란 스포츠 놀이 시설도 있었다.
라트비아 수도 리가는 한 때 번성하던 한자동맹 무역거점 항구로 부유했었다고 한다. 무역으로 돈을 벌게 된 상인들이 그 당시 유행하던 건축양식인 아르누보(독일어론 유겐스틸이라 함. 비엔나에도 유겐스틸 양식 건물이 많다.) 건물을 주택으로 많이 지었고 이로 인해 세계에서 아르누보 건축양식의 건물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가 리가라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소련연방의 일원이었어서 서유럽보다 도시를 덜 개발시켜 현재 상태로 둔 탓에 더 잘 보존된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가이드북에 나온 아르누보 투어 지도를 따라 가장 중요한 10곳의 건물을 모두 둘러보았다. 건물마다 자기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론 사치스럽지만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요즘은 영화 같은 것이 예술의 종합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 당시엔 건축이 예술의 종합판이었다고 하니 그도 그렇듯 하다.
리가 시민들이 모은 돈으로 만들었다는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
리가에도 유럽 주요 관광도시에 있는 이층 버스 Hop on & off 버스가 있었다. 운 좋게 아침 일찍 거리에서 보여 바로 타고 투어를 했는데, 다른 도시보다 좀 싸다 느꼈는데 역시 노선과 볼거리가 투어버스를 만들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찍은 정교회인데 발트에서 가장 크다고 설명한다. 특이한 점은 소련에 합병된 뒤 러시아인이 라트비아에 많이 이주해와서 지금은 라트비아 인구 30% 이상이 러시아인이라고 하니 러시아어가 공용어처럼 쓰이고 라트비아인과 언어 등으로 갈등이 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엔 러시아 인구로 인한 문제가 거의 없다고 하는 점도 신기했다. 라트비아 리가가 발트에선 가장 번화? 한 큰 중심 도시이고 그 바로 옆에 아직도 러시아 부호의 별장이 있다는 럭셔리한 리조트가 많은 유르말라 비치가 있고 가우야나 크메리 국립공원 같은 대자연이 리가 근처에 있어 러시아인들이 많이 이주해 살았던 게 아닐까 하고 관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리가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도 스톡홀름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고 하니 발트의 중심도시란 말은 맞는 듯하다.
바르샤바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는데, 이는 바르샤바 시민들이 가장 혐오스러워하는 거대한 건물이라고 하였는데, 리가에도 소련 독재자 선물이었던 이 건물이 있었다. 버스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3개의 비슷한 건물이 선물로 지어졌는데 이곳 리가와 바르샤바, 한 곳은 모스크바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 이 건물 역시 소련 시대의 유물로 시민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건물이라 한다.
리가 길드 상인의 수호신인 흑인 성인
이 집은 유명한 집이라 역시 중국 단체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룬달레 궁전의 궁중요리 식당엔 한국 단체 관광객이 있었는데.. 발트 2개국의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고 샤슬릭이란 꼬치구이가 유명하다. 슬로바키와와 비교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리가 중심을 제외하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맥주가 아주 일품이다. 체코 살면서 50여종 이상 다양한 체코 맥주를 맛보았고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 최고이며 금빛나는 맥주인 라거 방식을 최초 개발한 체코인 못지않게 라트비아 사람들도 맥주를 좋아하고 즐긴다고 하며 역시 라트비아 마트에서 보니 라트비아의 자기 나라 맥주도 대략 잡아도 20종류는 넘는 것 같다.
리투아니아인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는 곳. 소련의 탱크가 없애도 다음날이면 다시 세워지곤 했다는 수많은 십자가들. 수많은 성당이 있는 카톨릭의 나라 리투아니아답다.
리투아니아 팔랑가는 해지는 광경으로 유명한데 역시나 해지는 것을 보기 위한 많은 벤치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호박을 주을 수 있는 백사장이 있는 아름다운 해변.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고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고 비교적 경제적인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있는 곳. 멋진 소나무를 가진 해변 팔랑가였다.
내가 본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는 너무나도 보여 줄 것이 많은 관광지원을 가졌지만 아직은 덜 알려져 붐비지 않고, (유럽 내에서도 말이다. 주변 슬로박 친구들도 아무도 가본 사람이 없다.) 하지만 몇 년만 지나면 많은 관광상품으로 단체 중국관광객들이 넘쳐날 그런 곳이 될 것 같다. 물론 여름에만 말이다. 긴 겨울을 가진 나라이지만 북반구에 위치해 있어 여름엔 해가 지는 시간이 11시는 넘어야 하니 시간적으로도 아침에 덜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여름 발트관광이 최적의 여행지가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