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정수

붉은 광장과 크레믈

by 준비된 여행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성당의 환상적인 야경 사진은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모스크바의 아이콘이다.


누구나 이 사진들을 보면 한 번쯤은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싶을 것이다. 붉은 광장에 오후에 왔을 땐 비가 좀 많이 와서 걱정을 했는데, 8시경 해가 진 후 날씨가 개어서 다시 붉은 광장의 땅을 밟았을 때는 더욱 신선해진 경치를 볼 수가 있었다. 시간을 들여 건물 전체를 빙둘러보며 건물 자체를 감상하였다. 정말 멋진 건축물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면 하늘 위에서 찍은 사진(아래 사진 참조)은 롤리팝과 너무 닮아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힌트를 얻어 현재의 롤리팝 형태의 사탕을 만들어 큰 인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성당 곁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건물의 아름다움에 더욱 미련이 있었던 이유는 이 성당 건축가에 대한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공국에서 통일 러시아의 기틀을 만든 중요한 인물이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일명 뇌제로 알려져 있는 이반 4세의 명에 의해 이 성당은 건축되게 된다. 그는 까잔한국(볼가강 중류의 타타르족 왕국)을 정벌한 기념으로 성당을 만들게 했고, 1560에 드디어 완공된다. 완공된 성당의 아름다움에 반한 이반 4세는 다신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지 못하게 건축가의 눈을 뽑아버렸다고 전해진다. 이런 전설을 생각하며 건물을 보자니, 이 위대한 건축가의 눈이 오래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건물을 더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큰 아쉬움이 남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엔 이 성당을 본떠 만든 피의 구원 사원이 있는데, 그나마 너무 멀리 있는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위안은 줄 듯하다.


성 바실리 성당이 있는 붉은 광장은 명실상부한 러시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붉은 광장인 까닭은 옛 러시아어에 '아름답다'라는 단어가 '붉다'라는 의미로 변화된 것이어서, 아름다운 광장이란 의미가 있다. 보통 유럽의 사각형 광장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크며(러시아는 국토의 크기부터 모든 것이 크다) 레닌의 묘와 크레믈 벽, 건너편 거대한 굼백화점과 바실리 성당, 그리고 역사박물관으로 4면이 구성되어 있다.


붉은 광장에 들어서기 위해선 부활의 문을 통과하게 된다.

부활의 문
부활의 문을 통해 보이는 성바실리 성당

부활의 문은 16세기에 지어진 성문에 17세기 들어 첨탑을 올려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지금의 문은 스탈린에 의해 1931년 철거된 것을 소련 붕괴 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철거의 사유도 비참한 게, 전승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이 문이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문 앞에 있는 황금색 동그라미에서 동전을 던지는 풍습이 있는데, 이 원은 모스크바의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로보노예 몌스따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 앞에 로브노예 몌스따라는 동그란 우물처럼 생긴 조형물이 있다. 이곳은 1549년 이반 대제가 타타르족과의 평화를 선언한 장소로 유명하다. 그 후 이곳은 러시아의 차르가 연설을 하는 등 국가적인 행사의 무대로 사용되었다. 러시아어의 소문자로 로버노예 몌스따를 쓰면 단두대란 의미가 있어 단두대로 불리며 실제 사형이 집행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레닌의 묘

붉은 광장의 크레믈 성벽 앞엔 레닌의 묘가 있다. 레닌의 사체는 실제로 박재된 상태로 안치되어 있고, 관광객에게 공개되기도 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닫혀 있었다. 최근 러시아 뉴스에서 레닌의 사체를 박제 상태로 두며 유지하는 것에 대해 너무 비인간적이란 사유로 매장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들었다. 보관을 위해 계속 약품 처리하는 것도 그다지 이성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을 정면에서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이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국립역사박물관

국립 역사박물관은 러시아의 석기시대부터 사회주의 혁명 이전까지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했으나, 크레믈에 들어가는 시간(9시 30분 매표소 오픈, 10시 크레믈 입장 시작)을 감안하여 내부 관람은 과감히 스킵했다.

역사박물관 앞엔 2차 대전의 영웅 주코프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다.


크레믈 맞은편 거대 건물이 러시아 국영백화점인 '굼'이다.

화려한 굼백화점 야경

굼은 러시아어 국영백화점의 머리글자를 따 온 것이며, 러시아 최대의 백화점이다.

이 거대한 백회점은 120년의 역사를 가진 곳으로 지금은 고급 유명 브랜드의 샵으로 가득 차 있다.

주룩주룩 오는 비도 피하고 식당가에서 점심도 해결할 겸 내부로 들어섰는데 그 화려함에 감탄할 만했다. 입구엔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의 줄이 줄어들 줄 모르고 있다. 아이스크림을 떠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박스채 개당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와 팔고 있다.


굼백화점 내부

백화점에서 간단하게 점심 끼니를 해결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궂은 날씨에 있기 좋은 장소이다. 소련 시절엔 대외선전용으로 사용되었고, 소련 붕괴 땐 팔 물건이 없어 텅 비어 있기도 했다고 하니 지금의 화려함과는 다른 과거가 있던 곳이다.

굼백화점 건너편엔 '어린이 굼' 이 있었는데, 아이들의 장난감 등을 주로 파는 곳이었다. 거기서 놀란 2가지가 있었다. 너무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과 너무 많은 점원수였다. 아마 러시아 부호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사나 보다. 그리고 로보카 폴리, 또봇 등 한국 캐릭터 장난감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유럽에선 보기 힘든 물건들이라 생소했다. 러시아로의 수출이 유럽보다 많은지,,, 암튼 마트에서도 초코파이 등 한국 과자류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아내는 한국보다 가격이 싸다며 구입하기도 했다.

모스크바에서 사온 2종류 파이 과자


부활의 문을 들어서면 까잔성당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까잔성당 야경

까잔성당은 최초 1625년 지어진 성당이았지만 스탈린이 철거를 했었고 최근의 모습은 1993년 재건한 것이다. 안에는 정성스레 기도를 드리고 있는 많은 러시아인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본 러시아 정교회의 특징은 내부에 좌석이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 사원에서처럼 좌석이 없는 룸의 구조인 것이 특이했다. 그리고, 유럽의 가톨릭 성당과 달리 천장을 포함한 모든 벽이 빼곡히 이콘(icon)화로 가득 차 있다.

이콘은 러시아 문화의 독특한 현상이다. 러시아 예술사엔 서유럽과 달리 르네상스 단계가 없었다. 러시아 이콘화는 종교 예술이 세속을 뛰어넘는 7백 년 동안 이룩된 것들이다. 내용은 성자의 일생을 그린 성인의 일대기를 작은 칸에 그려 넣고, 이야기는 좌측 상단부터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전개된다. 성모나 그리스도, 성인을 그린 것들도 다수 있다.

이콘화의 큰 특징은 역 원근법을 사용하여 보는 사람과 그림의 성서 속 장면이 평면에 위치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기법으로 성스러운 장면이 관찰자의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구도도 가장 중요한 사건을 정면에 배치시켜 바로 핵심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무엇보다 황금빛 바탕의 금박을 사용하여 성인의 위대함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그리고 원형의 성인의 후광을 넣어서 신성을 표시하며, 이는 지상의 세계를 나타내는 사각형 등 다른 도형들에 대비되게 한다.


아쉽게도 크레믈의 모든 사원을 포함 성당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기록에 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성당 내부를 가득 채운 금빛 이콘화의 화려함과 종교적 엄숙함에 바로 압도당하고 만다.


이제 본격적인 크레믈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크레믈을 만나기 전에 먼저 만나게 되는 필수적인 통과 코스는 기다림이다. 티켓을 사기 위한 기다림과 크레믈을 입장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검색대로 향하는 긴 줄에서의 기다림이다.

크레믈입장을 위해 줄서 있는 사람들

우린 이런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인터넷으로 구매를 미리 했다. 매표소에서 영수증을 티켓으로 바꾸는데 아이들도 여권을 보여주면 공짜 티켓을 발급해 준다. 이 티켓은 가는 곳마다 계속 보여주어야 하므로 잘 지니고 다녀야 한다. 티켓은 크레믈 내 사원을 들어가 볼 수 있는 티켓과 무기고 티켓을 사는 것이 좋다. 티켓의 종류가 다양하다. 무기고엔 러시아 황실의 마차나 의상, 도자기, 각종 보물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꼭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단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전시한 다이아몬드 박물관은 별도의 티켓을 사야 한다. 아이들이 공짜인 곳은 이번 여행에서 크레믈이 유일했다. 1회용 지하철 티켓도 아이들은 어른과 동일 요금이었다.

크레믈 영어안내도. 각 성당엔 한글로된 설명서도 비치되어 있다.

검색대 통과는 모스크바에선 일상이었는데, 여느 관광지 건물, 지하철, 공항입구 등에서도 검색을 한다. 여권심사도 정말 기억에 남는데, 90일은 비자가 필요 없는 한국 여권과 슬로바키아 체류비자가 있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우리 가족 모두를 하나하나 심사했다. 아마도 내 경험상 가장 오래 걸린 입국 심사였던 것 같다. 그리고 호텔을 제외하곤 어느 곳에서도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불편함이 있다. 오히려 관광지 상점에선 중국어를 구사하는 점원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러시아어는 로마식 알파벳이 아닌 키릴 문자를 쓰므로 글자를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틀째부턴 키릴 문자 몇 개의 읽는 방법을 익혀, 지하철역 등에서 영어 스펠링과 대조해 보기도 했다.


크레믈은 러시아 정치의 중심지이다. 성벽이란 뜻의 크레믈은 길이 2.5Km의 성벽으로 과연 이름값을 한다.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도 크레믈 안에 있어서 일부 지역은 삼엄하게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근처로 가려는 포즈만 취해도 바로 제지한다. 과히 러시아의 최고 심장부라 부를 만하다. 성벽 안에는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러시아의 사원과 궁전이 있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 이전의 러시아 건축물과 이콘화의 정수를 볼 수 있다.


크레믈 안 여러 성당 내부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크레믈 안에는 성모 수태고지 사원, 황제들 가족의 교회인 황족 교회, 성모승천 사원, 총주교 궁전 및 12 사도 교회 등 다양한 정교회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크레믈 안 사원의 황금지붕은 크기 뿐 아니라 숫자도 많다.

크레믈 안에선 거대한 황제 대포도 구경할 수 있다.

황제대포

황제 대포는 16세기 러시아의 무기 제작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청동으로 만든 대포는 무게만도 40톤에 달하며, 대포에 새겨진 섬세한 무늬가 인상적이다.

크레믈 안에서 본 성바실리 성당

황제 종 또한 진귀한 볼거리이다.

조각마저 거대한 황제 종. 이 종의 무게는 202톤에 이르며, 조각만 해도 11.5톤이라니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이 거대 종이 깨진 이유는 1737년 크레믈 화재 당시 뜨거워진 황제 종에 찬물을 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 황제 종은 단 한 번도 울리지 못한 채 종의로서의 생명을 마감하고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크레믈과 붉은 광장을 나오니, 지하철역 앞 광장엔 부활절을 맞이하여 아기자기한 물건과 음식을 파는 부활절 마켓과 밴드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부활절 마켓 야경

그리고, 밤에 다시 찾은 이 광장엔 회전목마가 한가로이 돌며 예쁜 조명에 빛나고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을 하룻 밤일 수 있지만, 이 밤만은 특별하다. 나의 감성을 깨운 붉은(아름다운) 광장과 젊었을 적 테트리스를 통해 처음 접한 성당(성 바실리 성당)의 쉬 잊히지 않을 이 장면을 역대급 내 인생의 이미지로 간직한다. 그리고 내 여행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모스크바의 대표 이미지로 오랜 시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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