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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 여행 Jan 20. 2018

아크로폴리스 문 닫은 날 아테네 여행

코스타 루미노사 지중해 크루즈

아드리아해 크루즈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아테네였다. 애당초 크루즈에서 그렇게 광고했다.  하지만 나에겐 아테네는 일주일 일정으로 이미 다녀온 곳이라 그리 큰 기대는 없었다.

떡 하니 레터가 객실에 와 있었다. 내용은 12월 26일은 특별한 날로 아크로폴리스뿐 아니라 아테네의 모든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는 공지였다. 그래서 단체관광 상품 선택한 사람에겐 취소 및 방문지 조정 등 코스타와 협의가 필요하단 것이었다.

우리야 단체 관광 상품을 신청한 것도 아니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으로 보진 않아서 심리적 피해는 작았다.

원래 아크로 폴리스는 연중무휴인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날은 뭔가 특별한 사정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테네 지하철


아테네는 이미 구석구석 가본 지라, 입장료를 내지 않는 길거리 위주로 여행 일정을 급 수정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신타그마 광장이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느리게 진행되는 근위병 교대식을 지켜보았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모든 유럽의 근위병 교대식 중 모스크바가 가장 멋지다.

의사당 근처엔 규모가 있는 국립정원이 펼쳐져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초록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겨울에도 울창한 국립정원의 나무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자피온이었다. 고대 그리스 유적에 비해 아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근대 올림픽 본부로 사용되었던 의미 있는 건물이다. 다음날 방문한 올림피아와 더불어 올림픽 관련 유적지는 모두 세세히 방문하게 되었다. 평창에서 곧 동계올림픽이 열리니 이번 방문에 더욱 의미가 느껴진다.

자피온은 건물 자체가 의미가 있다. 그리스계 루마니아인 콘스탄티노스 자파스가 후원한 건물이라 한다.

자피온 내부


자피온 건너편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신전인 제우스 신전이 있다. 물론 날이 날인 만큼 문이 닫혀있다. 철창 너머로 제우스 신전을 슬쩍 보았다. 재우스는 신들의 왕이므로 가장 큰 신전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4세기 고트족의 침입으로 많이 부서지고 원래 104개였던 기둥은 15개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신전 내부의 제우스 동상은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며 완전 파괴되어 이젠 터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제우스 신전 옆에 있는 히드리안의 문은 입장료가 없는 곳이라 자유로이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구 아테네와 신 아테네를 나누는 이 문은 132년 히두리아누스 2세에 의해 지어진 문으로 그리스인과 정복자 로마인의 거주지를 나누는 문이었다. 한쪽은 테세우스의 마을, 반대쪽은 히드리아누스의 마을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정복자 구역이란 표시일 것이다.

히드리안의 문 

히두리아누스 이곳을 방문하며 그와 로마의 위대함을 표시하고자 하였나 보다. 로마인이 그리스 신을 그들의 신으로 둔갑시키고 많은 그리스 문화를 계승했지만, 정복자이므로 그리스보단 우월한 종족임을 표시하는 것이었을까?

우리 가족은 플라카로 향했다. 이곳은 현대의 아테네와 골목골목의 아기자기함을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이라 크루즈 여행객으로 보이는(알베로벨로 단체 여행 시 옷에 붙였던 같은 스티커를 붙인 사람이 가득) 관광객 외엔 인적이 뜸했다. 비싼 돈을 지불한 가이드가 데리고 다니는 곳이 계속 우리의 일정과 겹친다. 한 박자 느리게 말이다. 인원이 많아 같이 움직이다 보니 단출한 우리 가족보단 지체되고 있는 듯했다.

플라카지구로 향하는 길

플라카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몇 가지 작은 기념품을 사주고 플라카 지구 내에 있는  리시크라테스 기념비를 보러 갔다. 지난 방문 시는 그냥 지나치듯 흘러간 곳이지만, 시간적 여유가 많다 보니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모두 고고학 박물관과 아크로폴리스를 들어갈 수 없어 생기게 된 억지 시간 여유이다.

Lysikrates 기념비는 기원전 335~334년 포도주와 풍요의 신(즐기고 취하는 것과 관련?)인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경연대회에서 후원자 리시크라테스가 우승 상품 청동 트로피를 세워 놓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대회의 우승 트로피라니 지금은 없어진 이 트로피가 얼마나 화려하고 거대했을지 궁금해진다.

플라카 지구를 내려오는 길에 로만 아고라를 지나쳐 왔다. 아테네의 모든 유적지가 모두 문을 닫은 날이라 입장은 못하였지만, 로마인의 삶과 정치의 중심지였을 과거가 지금의 폐허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스도 분명 로마의 일부였으니, 고대 로마 것도 현대 그리스에 폐허로 남아 있음이 일면 당연하다.

창 살 안으로 보이는 로만 아고라
폐허의 로만 아고라 입구
로만 아고라

아크로폴리스는 못 들어 가지만 주변은 가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가 본 아크로폴리스...

차가 없어 아테네 외곽으로 가기도 어렵고 하여 내린 결정이다. 알베로벨로 때와 달리 시간이 남아 도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멀리서만 바라 볼 뿐....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음악당과 극장을 연결하는 통로인 유메네스의 스토아를 볼 수 있었다. 64개의 도리아식 이중 회랑으로 만들었다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윤곽만 남아 있었다.

유메네스의 스토아
문닫힌 창살 너머로 보이는 아크로폴리스 음악당

아크로폴리스에서 배로 돌아오려는 길에 우연히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 있는 언덕을 발견했다. 전에 오랜 시간 아테네를 여행했어도 그냥 지나쳤던 곳인지 생소한 곳이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바라 본 아테네 전경
아레오파고스 언덕

대리석 바위로 형성된 자그만 언덕이어서 올라가는데 좀 미끄러웠다. 하지만 아크로폴리스 옆에 있는 언덕이라 경관이 훌륭했다. 멀리 아크로폴리스도 보이고 반대편엔 아테네 시가지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올라오길 참 잘했다.

배로 돌아와 확인해 보니 이 언덕은 아레오파고스 언덕이었다. 이곳은 자신의 딸을 강간한 사촌을 죽인 전쟁의 신 '아레스'를 재판하기 위한 신들의 회합이 열렸던 곳이란 전설이 있는 곳이었다.

아레오파고스는 그리스의 대법원을 뜻하기도 한다. 언덕에 모여 토론과 재판을 하는 신들의 모습을 배에 돌아와 상상해 보았다.


또한 이 언덕은 기독교에서도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사도 바울이 여행 중 설교를 했던 성지였던 것이다. 언덕 아래편엔 사도행전 17장 22~31절이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다. 처음 봤을 땐 사람들이 언덕 아래 어느 동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행이다.

준비된 여행이 안되다 보니 놓치는 것이 꽤 있다.


그리고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뜻하지 않게 보게 되고 나서 느낀 점이 있다.

"시간이 여유로우면 뜻밖의 즐거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마도 마음이 여유롭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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