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의 의식 구조 이해 (I)
유럽에 살며 관찰해 온 유럽인의 의식구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친구, 동료, 이웃, 부하직원, 고객, 선생님, 심지어 마트 점원 등 다양한 유럽인들을 만나면서 가지게 된 나의 생각이다. 두 가지를 이해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비교이다. 한국인과 유럽인의 비교를 통해 한국인에게서만 나타나는 사고방식 몇 가지를 추려 보았다.
한국인 중에도 '눈치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 그래도 최소한 한국인이라면 '눈치'라는 게 무엇인지는 알 것이다. 유럽인은 '눈치'가 없다. 아니,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눈치'란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으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한국인이 보기에 '저러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유럽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눈치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특히, 회사 안에서 자주 발생한다. 유럽인은 왜 눈치가 없을까를 고민한 결과, 나는 아래 두 가지 이유로 해석하고 있다.
① 유럽인(유럽에서 넘어간 북미인 포함)은 상사, 연장자 등 권위에 대한 존중이 (한국인보다) 약하다.
② 타인이나 집단에 대한 의식보단 자신이 우선이다. 자의식이 강하다.
한국의 사회문제인 갑질이 유럽엔 없다. (아주 적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사전적 정의다. 유럽 사회에서도 누군가는 어떤 상황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월적 지위에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사회통념상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사회통념상 안될 일이지만, 실제 갑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유럽에선 누구도 이런 갑질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생각엔 유럽 사회에 갑질 문제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래 2가지인 것 같다.
① 유럽은 계약 사회이기 때문이다.
갑을은 계약상 존재하는 이름일 뿐이다. 풀어 이야기하면, 계약상에 갑, 을이라고 표시되어 있더라도, 갑이 '갑질'을 할 수 있게 계약되어 있지 않는 이상, '갑질'을 할 수 없다. '갑질' 문제는 갑이 계약을 넘어서는 월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생긴다. 근로계약이건, 납품계약이건 계약상에 주어진 책임과 권리만 이행하면 되는 것이 유럽 사회이다. 계약을 넘어서는 (위반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을'도 적극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사회는 당연히 인정한다.
② 현대의 유럽은 (비교적) 평등한 사회이다.
유럽은 빈부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다.(EU 국가 기준(영국 제외)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음)
아메리카나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보다 빈부의 격차가 덜 한 곳이 유럽이다. 사회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세율이 높고, 누진세제가 적용된다. (북유럽 국가들을 위시하여) 기본적인 의료, 교육과 노후생활은 국가가 보장한다. 자국민들 사이에선 경제적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고, 제도적으로 균등한 기회가 제공된다.
한국인이 가진 상대적 우월함은 '임기응변 능력'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국인의 사고는 유연하다. (지난 10여 년간 내 경험으론) 평균적인 유럽인과 비교하면 사실이다.
II. 에서 설명했듯, 계약 사회인 유럽에선 선을 넘지 않는다. 계약대로 하면 그만이고, 그 이상은 하려 하지 않는다. (개인적 생각으론, 비즈니스에 국한해서, 자본주의가 더 발달할수록 목적을 위해 사고가 더 유연해진다.)
회사에서의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 유럽문화권에서는 업무 매뉴얼, 업무분장 등 일상적 체계는 한국보다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벗어난 상황에선 잘 대처하지 못한다. 한국인이 느끼기에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도, 유럽인들은 전혀 다른 사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유럽인이 고지식하고, 임기응변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 해본 일을 알아서 하기란 기대할 수 없다.) 유럽인은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 같으나, 그 논리적 사고가 위협받는 상황에선 현저히 대응능력이 떨어진다. 유럽인은 한국인보다 논리적 일진 몰라도, 유연한 사고를 하지는 않는다. 기계적 이성보다 감성에 기반한 유연성을 키우는 것은 유럽인보다는 한국인에게 익숙하고 쉬운 일이다.
한국의 도심은 빨리 걷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빨리 먹는 사람들, 좀 더 빨리 가려고 애쓰는 차들, 심지어 마트 계산원의 바코드 읽는 속도조차 빠르다. 교육에선 선행학습(이건 일종의 추월이 아닌가?)이 대세다. 유럽 대도시 삶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빠르다. 한국 비즈니스에서도 빨리 업무를 끝내고, 보고하고, 의사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식 속도에 맞추려면 무엇보다 신속성이 필요하다. 나는 한국인과 유럽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생활 방식 차이가 시간을 사용하는 속도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빠르게 경제발전을 한 것은 타국가들과의 속도경쟁에서 성공한 측면도 있다.
유럽인의 시간을 쓰는 방식은 한국인과 차이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면 유럽인은 느리고, 게으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균적인 유럽인에 있어 일하는 방식이나 하나의 업무를 완벽하게 끝냈다고 느끼는 시점에 대해선 한국인과 차이가 있다. 한국인이 보기엔 답답하지만 말이다.
비즈니스에 있어 신속성과 빠른 일처리는 분명 장점이다. 다만, 빠르게 + 너무 길게 일을 한다면 지나친 속도감에 빨리 에너지가 소진되고 말 것이다.
그 외에도 끼리끼리 문화(학연 지연 우선), 독특한 음주문화(폭탄주, 술 권하기) 등이 있다. 비교적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아 순위에선 제외했다.
유럽인과 한국인의 사고체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오랜 종교적 기반이 다르고, 근대/현대사회를 지나온 역사가 다르다. 타문화권 사람들을 잘 알려면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