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년 전엔 세계의 중심이었던 곳
이번 안달루시아 여행의 불운의 징조였었던지, 유명 관광지로선 큰 소득이 없었던 세비야를 떠나 Cordoba로 향했다. 코르도바는 세비야에서 14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두 곳 모두 비교적 큰 도시라 고속도로는 잘 연결되어 있었다. 코르도바를 방문했던 날도 스페인 공식 휴일이서였던지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사실 유럽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명절이라, 여행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만나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고, 집에서 가족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의 설날이나 추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관계로 관광지에도 많은 상점과 식당이 문을 열지 않는다. 심지어는 유명한 관광명소도 문을 닫는 일도 흔하다. 돈보다는 가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코르도바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고, 성벽을 따라 관광인파를 따라갔다. 보통 주차장에선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곳이 유명한 관광지로 가는 길일 확률이 높다.
우리가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코르도바 관광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메스끼따(Mezquita), 즉 모스크였다.
이 모스크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는 이슬람과 가톨릭이 한 공간에 혼재되어 있는 거대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로마제국의 멸망 후 스페인 반도는 서고트족이 지배하는 기독교 국가였다. 하지만 622년 마호메트가 이끄는 이슬람 세력은 아프리카 북부까지 영토를 넓혔고 바로 위에 있는 스페인으로 들어왔다. 이들을 무어인이라고 불렸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모로코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언어로 변화되어 무어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랍의 지배는 711년부터 1492년까지 계속되었다.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은 이베리아 반도 북쪽의 아스투리아스 지방과 나바라, 아라곤의 산간지역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지배하였다고 하니, 대부분의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땅이었던 것이다.
무어인의 지배 시절에 있어 초기엔 칼리프(다마스커스에 있는)의 지배를 받는 형태를 가졌으나, 756년 우마이야 왕조의 압데라만(아랍어론 압둘 라흐만) 3세는 코르도바에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 스스로 칼리프가 된 것이다. 이 당시 왕국 이름이 알-안달루시아 왕국으로 바그다드의 압바스 왕조를 능가하는 왕국이 된다. 당시 코르도바의 인구가 백만 명을 넘었고, 300개가 넘는 모스크가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엔 이슬람 지배자들의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종교 정책으로 유대인은 자신들의 지역 모여 살며 유대 예배의식도 가질 수 있었으며, 피지배자였던 대다수 스페인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을 한 사람도 있었고 기독교를 고수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즉 3가지 종교가 공존하고 융합할 수 있었던 덕에 세계의 중심으로 불릴 만큼 문화적 융성기를 맞았다고 한다.
이러한 무어인의 지배시대인 780년 압둘 라흐만 1세에 의해 서고트왕국의 교회가 있었던 자리에 처음 세운 곳이 이 메스끼따였다. 그 후 여러 차례의 확장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메스끼따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는 데도 거의 1시간 반 이상 소요될 만큼 큰 건물이다.
메스끼따는 기독교 성당의 주춧돌과 기둥, 스페인 서고트족의 건축양식(말발굽 형식의 아치)을 고스란히 이용하여 완벽한 동서양 융합의 건축물을 완성한 것이다.
정면에 18개의 대형 아치 출입문이 있고, 말발굽 모양의 아치들은 벽돌 크기로 자른 흰 석회암과 붉은 벽돌을 교대로 이어 만들었다. 무엇보다 아치들이 모두 이중으로 되어있는 점이 아주 특이하다. 기둥을 덮은 이 이중 아치들은 낮은 천정으로 답답해 보일 수 있는 내부를 높게 보이는 시적적 효과를 주고 있다. 채광은 바깥 정원에서 입구의 문을 통해 햇빛이 들도록 했다. 또한 천장 여러 곳에 돔을 만들어 지붕에서 빛이 들어도록 하고 오일램프를 달았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지, 기독교인들은 무어인에게 빼앗겼던 땅을 되찾기 위해 레꽁끼스따(국토회복전쟁)을 시작한다. 기독교도들은 800년에 걸친 기나긴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을 치르며 그라나다 왕국을 마지막으로 함락시키며 스페인의 재 기독교화를 완성시킨다. 그라나다가 마지막 이슬람 세력으로 왕국을 이루고 있었을 때, 나머지 4개의 기독교 왕국이 존재했는데 포르투갈, 북부와 중부의 레온-까스띠야 왕국(현재 마드리드 지역 포함), 북부 산악지대의 나바라 왕국, 지중해의 동부 까딸루냐(바르셀로나 있는 곳)-아라곤 왕국이 그것이었다.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던 까스띠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이 1469년 결혼을 통해 정치적 통합을 이루게 된다. 이들이 그 유명한 '가톨릭의 왕들'이다. 이 왕들이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왕들이기도 하다. 가톨릭의 왕들은 그라나다 정복 후, 포르투갈을 지배하려 했고(1581년 포르투갈은 60년간 스페인에 통합되기도 한다.) 백작령이었던 까딸루냐를 흡수하고 나바라와도 합병을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1505년엔 나폴리 왕국의 모든 영토를 점령해 지역적 통합을 이루었다. 스페인의 완전한 전성기가 시작하는 시점이다. 아마도 800년간의 레꽁키스따를 통해 응집된 기독교 스페인의 에너지가 대항해 시대를 맞아 이탈리아인 콜럼버스를 후원하며 신대륙 발견(가장 알려진 가톨릭 왕들의 업적이 유럽인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다.)과 식민지로부터의 막대한 부의 유입, 강력한 무적함대를 갖게 된 실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주요 세력은 까스띠야 왕국으로 반도의 까스띠야화가 진행되며 이는 20세기까지 지속된다. 지금의 스페인어도 까스띠야어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바스크나 까딸루냐 지방은 지금도 까스띠야화에 반대하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메스끼따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건물의 중앙 부분에 당시 왕 까를 5세가 성직자들에게 설득되어 16세기에 만들었다는 까떼드랄(성당)이 있다. 하지만 완공 후에 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을 부수고 어디에나 있는 것을 지었다며 탄식하였다고 한다.
메스끼따에서 인근의 알카사르(무데하르 양식의 성)를 방문하였으나, 월요일인 이유로 이곳도 개방이 되고 있지 않았다. 개장일을 보지 않고 코르도바 일정을 짠 내 잘못이었다.
알까사르 내부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대 시대를 보기 위해 로마다리로 향했다.
로마다리는 최초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다리로, 여러 번의 복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은 이슬람교도가 정비한 다리에 기독교도가 다시 복원 작업을 한 것이라고 한다.
코르도바에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유대인 마을과 이어지는 꽃의 골목이었다.
코르도바에서 간단하게 장을 보기 위해 들른 마트(까르푸)에서 대단위의 하몽(Jamon, 'J'는 스페인 알파벳 '홋따'로 X [목구멍으로부터 나오는 강한 '흐' 발음]발음이 난다.) 코너를 발견했다.
훈제 가공식품인 하몽은 산간지방의 건조하고 추운 기후 속에서 돼지의 넓적다리로 만드는 햄의 종류이다. 육포를 씹는 듯한 질감이 느껴지지만, 맛은 무척 부드럽고 고소하다.
스페인 햄의 자랑인 하몽 이베리꼬라고 하는 비싼 하몽은 일반적인 하몽 쎼라노보다 더 부드러워 입에서 녹는 듯한 느낌으로 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정도이다. 오직 야생 도토리만을 먹여 야산에 방목하며 키우기 때문에 부드러운 맛이 난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여러 따빠스에서 하몽을 맛보았다. 그다지 짜지도 않고 정말 고소하고, 곁들여 먹는 이름이 생소했던 전분류의 음식과 곁들여 먹으니 더욱 고소한 느낌이 났다.
본격적인 스페인 음식과 그들의 식문화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