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나를 알아가는 시간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

by 납작복숭아

인간은 살면서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카메라에 찍힌 얼굴은 볼 수 있지만 내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선과 기준으로 살아간다. 학교, 직장, 시험… 나라는 사람 앞에 붙는 수식어에 더 집착하며.


스물아홉, 2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이제야 신입사원이 되었다. 빠르면 4년차 사회인이 된 친구들이 있는 시기에 이제 막 출발선에 선 것이다. 이 글은 지금까지의 나를 회상하며 쓰는 글이다.


요즘 나는 종종 생각한다. 29살에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고. 사춘기는 청소년이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라는데, 나는 이제야 나를 좀 알게되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 말을 잘 듣던 딸은,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특목고에 진학했고, 명문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고시를 준비했다. 물론 거기에 딸의 의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마가 원하는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라 믿었고,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예상하듯이, 실패. 시험 공부를 하며 얻은 것은 약으로 잠재워야 하는 불안 증세와 날아가버린 20대 중반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감이었다. 더이상 기약없는 시험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 "1년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독서실과 방에 틀어박혀 있던 생활을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게 취업의 길을 걷게 되었다.


취준을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법을 배웠다.

엄마가 보여주는 거울이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이목구비를 만지면서 얼굴의 생김새를 알아가게 되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였고 직무를 선택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취업 컨설팅, 현직자 선배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몇년 전이라면 도망쳤을 질문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운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인가?"

예전 같았으면 코웃음치며 업적은 무슨 업적, 그냥 사는거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인생의 선택에서 나 자신을 기준으로 두게 되었다.

남의, 가족의, 어른들의 기대보다 나의 상황을 직시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뭐 이런게 업적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고가 생겼다.


이번 최종합격이 뿌듯한 이유도 그래서이다.

사실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에 취업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세운 기준에 적합하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회사라고 판단해 지원했고, 여러 전형을 통과했다.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아주 작고, 어린 시기에.

그런데 나는 좀 늦게 깨고 나온 듯 하다. 몸만 커지고, 이제서야 사춘기를 겪으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브런치스토리 첫 글입니다. 취업 관련, 회사 관련 여러 이야기를 써보며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이 글을 보신 분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