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ringnote Mar 08. 2020

얼음 사이다


사이다엔 얼음이 꼭 필요하다.

얼음 없는 사이다는 꼬리 없는 붕어빵이나 마찬가지다.(꼬리 먹으려고 붕어빵 먹는 사람인지라...)

몸에 안 좋은 것들이 대게 그러하듯 얼음 사이다도 몸에 좋진 않지만 기분이 좋다.

얼음 사이다의 목 넘김은 꼭 그런 기분이다.

여름의 워터파크 미끄럼틀에서 오랫동안 줄을 서느라 짜증이 잔뜩 났는데 

드디어 내 차례! 


너무 높아 잠깐 망설이던 차에 아르바이트생이 내 등을 밀어버려서 예상치 못한 엇박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간 거지. 미친 듯이 하강하다가 물에 빠졌을 때 멍-하면서도 후련하고 줄 선 기억 따위 다 사라져 버리는 그런 기분.

탄산 방울들이 내 식도를 타고 미친 듯이 몸으로 퍼지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기분?


그 기분 좋은 비명들은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진동한다. 

그건 아마 어마어마한 양의 설탕들이 내 몸에 절여지고 있는 상태겠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그때 기분이 가장 좋으니까.

사이다 한 모금에 그때 잠깐은 뭔가 싸악-내려가는 것 같으니까. 

꽤 가성비 좋은 스트레스 해소제인 셈이지.


원래도 좋아하지만 요즘 약간 얼음 사이다에 중독됐다. 

3월엔 몸에 좋은 음식을 더 많이 먹으리라 결심하고 한 달간의 식습관을 기록할 달력까지 만들었지만

3월 5일인 지금 5일째 실패 중이다. 


노잼 시기인가.

직장인들이라면 다들 한 번씩 겪는 3.6.9의 위기인 건가. 

이름값 한다고 누구보다 일찍 봄을 타나?

요즘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다.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일도 마저 화낼 기운이 없어 관두고 만다.

그리고 계속 얼음 사이다를 찾는다.

얼음 사이다만큼 작고 확실한 짜릿함은 없지.


아... 회사 가기 싫다.

서른의 나는 회사 가기 싫을 때 내일 당장 출근해서

"내일부터 안 나오겠습니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요!"

맘 속에 숨겨둔 사이다 발언을 던지는 상상을 하며 얼음 사이다를 마시는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서른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