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_나쓰메 소세키

무위와 무능, 그리고 그 후의 무력감.

by LWB


다이스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위했다.


그는 능력도, 의지도 갖추지 못했다. 무능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모든 것을 잃었다.


무위와 무능의 결과는 ‘그 후’의 깊은 무력감이었다.




“그래서 그 후는 어떻게 되었나?”


'그 후'는 메이지 시대 도쿄, 한 남자의 조용한 파국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나가이 다이스케, 유복한 가정의 차남. 그는 일하지 않고, 집안의 지원에 기대어 살아간다.
감정은 있으나 표현하지 못하고, 윤리는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매일을 ‘미루는 삶’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의 인연이자 친구 히라오카의 아내가 된 미치요가 다시 그의 삶에 들어온다.
히라오카는 감정 없는 결혼으로 그녀를 맞았고, 정서적 돌봄 없이 무책임하게 살아간다.
그 안에서 미치요는 서서히 병들어가고, 다이스케는 이제야 자신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마음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사랑하면서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늦은 고백을 선택한다. 히라오카에게 감정을 털어놓고, 가족과도 등을 돌린다.


다이스케는 모든 기반을 잃는다.
미치요를 위해 돈을 빌리고, 처음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만, 이미 모든 건 너무 늦어버렸다.


소설의 끝에서 그는 전차에 올라, 일자리를 찾기 위해 어딘가로 떠난다.
창밖으로 붉게 물든 도쿄가 흘러간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자,
삶이 조용히 무너진 자리에서 맞이한, 가장 쓸쓸한 여명이었다.

'그 후'는 감정과 윤리 사이에서 끝없이 유예하던 인간이
결국 맞이하게 되는 내면의 폐허, 그 공허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다이스케는 유복한 가정 출신의 무직 지식인이다.

스스로를 고결한 사상가로 인식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의 지식인이다.

감정을 말하지만 실천하지 않고, 자유를 말하지만 책임은 회피하며, 윤리를 고민하지만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다. 내면의 진실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이지만, 그것을 외부 현실에서 구현하는데 실패한다.

그는 자유와 감정, 윤리를 깊이 고민하지만 언제나 결정을 유예하며, 결국 어떤 선택도 하지 않는 '무위'의 윤리에 도달한다. 이러한 유예는 도덕적 회피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미치요, 히라오카, 가족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는 우리에게 실천 없는 이상과 감정의 공허함을 보여준다.


미치요는 히라오카의 아내다.

감정의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한 시대에 타인의 결정에 따라 살아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병들며, 그 자신의 감정과 욕망은 억제되어 왔다. 그녀도 다이스케와 마찬가지로 선택한 적이 없지만,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저 백합을 사는 정도가 선택의 한계다. "왜 저를 버리셨지요?" 다이스케의 고백에 여러 물음 중에 그녀의 무력감을 가장 잘 나타내지 않았을까.

그녀는 우리에게 선택할 수 없는 삶의 병폐를 보여준다.


히라오카는 다이스케의 대학 친구이자, 미치요의 남편이다.

실용성과 자가합리화 중시하며, 감정과 윤리는 뒷전으로 미룬다. 그는 사회의 시스템에 순응하고, 체면을 중시하지만. 미치요와의 관계에서는 철저히 무관심하고, 정서적으로 단절돼 있다.

그는 다이스케와 정반대로 감정과 윤리를 회피한다. 그는 유예하지 않지만, 그 빠른 실천이 감정 없는 결정을 낳는다.

그를 통해 감정이 배제된 삶의 폭력을 보여준다.


세이고는 다이스케의 형이다.

메이지 시대의 전형적인 장남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이스케의 형은 다이스케와 달리 선택하지 않는다. 정해진 삶의 루트를 그대로 따라가며, 그것에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다. 그는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삶의 올바른 모습이라 믿는다.

그는 행동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우메코는 세이고의 아내이자, 다이스케의 형수다.

그녀는 다이스케의 가족 내에서 감정의 완충지대로 기능한다. 갈등을 드러내지 않고, 부드러운 언행과 정서적 예민함으로 가족 내의 질서를 유지한다. 전통적 여성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그녀는 매우 이상적인 '가족'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형수’로만 존재하며, 개인으로서의 자아는 삭제되어 있다.

그녀가 보여주는 삶은 기능으로 살아가는 인간, 역할에 맞춰 사는 삶을 보여준다.


세이타로는 다이스케의 조카다.

그는 자유롭고 명랑하며, 다이스케와 자연스럽게 놀고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 정서적 교류는 일시적이며, 다이스케가 회피하고, 끝내 거절한 삶의 한 형태를 보여주는 존재다.

그는 실천되지 않는 이상이 어떤 미래로부터 단절되는지 상징한다.


누이코는 다이스케의 조카딸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조신함과 예의를 요구받으며,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미리 '훈련'받는 존재다.

그녀는 우메코의 미래형이자, 미치요가 거쳐온 길의 시작점이다.


나가이 도쿠는 다이스케의 아버지다.

그는 무사 계급 출신으로, 시대 흐름에 따라 상업으로 전향하면서도 과거의 전통과 권위를 유지하려 든다. 그는 감정보다 명분, 개인보다 가문, 자유보다 책임을 우선시한다.

다이스케의 유예된 이상주의와 충돌하며, 근대 일본 사회가 겪은 가치관 충돌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가도노는 다이스케 집에 머무는 서생이다.

사회적 역할을 갖기보다는 다이스케의 집에 머무르며 의존적인 생활을 지속한다. 그는 명확하게 하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며, 제자도 아닌 경계적 위치에서 다이스케 주변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다이스케는 가도노에게 정서적 관심도 책임감도 없으며, 그를 통해 다시금 확인되는 건, 다이스케가 고결한 사상에 취해 자기기만하는 모습이다.

다이스케와의 초반부 문답에서 드러나듯이 둘은 매우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다. 그는 다이스케의 태도를 우스꽝스럽게 확대시킨 인물이다.

또한 계급에 따라, 같은 태도가 얼마나 다르게 우리에게 비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데라오는 다이스케의 친구다.

그는 문학을 이상적 표현이 아니라, 생계 수단으로 삼는다. 이상을 말하지 않고, 고뇌도 없고, 자기 정당화도 없다.

그는 이상 없는 실천가이며, 현실에 순응하며 감정을 배제한 삶의 무게 또한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사가와의 따님은 다이스케의 혼처 상대다.

단정하고 교양 있는 외양을 갖추었으나, 검정적 교류와 인격성이 부재한다. 그녀는 '이상적인 조건'만으로 구성된 존재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위해 존재한다.

그녀는 사회적 명분의 도구화된 여성을 보여준다.




다이스케는 왜 일을 하지 않았나.


그는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기력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며, 이는 자신의 이상주의적 자아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현실의 사회적 구조, 노동 질서가 인간의 자유와 감정을 억압한다고 느끼며, 그 틀에 자신을 맞추길 거부한다.

즉,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롭고 진실한 감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실천을 유예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자기 존재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 '순수성'은 타인의 고통 위에 성립된 자기기만이 된다.


다이스케와 미치요에게 백합은 무엇인가.


백합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과거에 공유했던 정서적 기억과 감정의 상징이다.

다이스케는 처음 백합을 받고, 그 향기를 맡지 않으려 한다. 이는 감정의 실현을 두려워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다이스케의 태도를 보여준다.

백합은 미치요에게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과거의 교감을 다시 마주하게 하는 수단이다. 그녀는 향기 속에서 진심을 확인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상처를 떠올린다.

결국, 감정이 있었음을 증명하면서도, 그 감정이 끝내 도달하지 못한 '그 후'를 떠올리게 한다.


다이스케는 미치요와 히라오카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다이스케의 첫 실천의 순간이다.

이전까지는 모든 것을 유예하고, 회피하던 인물이 타인의 어려움에 실질적인 행동으로 응답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순한 동정이라면 히라오카의 일자리처럼 쉽게 물러났을 사건을, 형수와 보증까지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는 미치요를 향한 깨어난 감정과 책임감이 표출된 사례로 봐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를 통해 무위가 아닌 무능을 드러냈다.


히라오카는 왜 병이 나은 후, 미치요를 보내준다 했나.


히라오카의 이 발언은 냉정한 계산이 아니라, 자신에게 남아 있는 감정의 마지막 흔들림을 드러내는 말이다.

그는 미치요에 대해 더 이상 애정이나 정서적 책임감을 느끼지 않지만, 동시에 그녀가 아픈 상태에서 '버리는'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치 않는다. 이 조건은 정서적 책임을 유예하기 위한 명분이자, 체면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사회적 포장이다.

"시신만 보내줄 셈이냐."는 물음은 그 속내가 들키는 순간이며, 실천 없는 감정과 감정 없는 실천, 모두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보여준다.


다이스케는 무능한가, 무위한가.


그는 표면적으로는 무위한 인물이다.

그는 행동을 유예하고 실천을 회피하며, 이상과 감정만을 말한다. 능력은 있지만 용기가 없고, 지식은 있지만 실행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무위라는 자기 정의 속에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며, 그로 인해 더욱 큰 무책임의 굴레에 빠진다.

작품은 다이스케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정교하게 자기 자신의 무능을 고결한 이상으로 위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이스케는 왜 무위를 추구하게 되었는가.


과거, 히라오카와 다이스케는 친했다.

히라오카는 과거의 다이스케를 두고 '대신 울어주는 친구'라 했다.

다이스케는 친구를 위해 자신의 감정을 죽이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 그는 고결한 이상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보다 친구를 위했고, 그 순간부터 그의 시간은 멈췄고, 멈춘 시간 속에서 그는 모든 것들을 유예했다. 히라오카와 미치요가 다시 나타났을 때부터 그의 시간은 감정과 함께 흘렀고.

흐른 감정은 뒤늦은 선택이 되어, 파멸로 치달았다.


다이스케의 마지막, 그는 일자리를 구하러 뛰쳐나가 전차에 올라탄다. 그의 세상은 붉게 보인다.


그가 실천의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지만, 동시에 너무 늦은 결단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미치요는 병으로 쓰러져 만나지도 못한 채, 이제야 자기 삶에 책임지려 한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 타들어갔다.

실천 없는 고결한 이상도 타들어 갔으며, 뒤늦은 선택에 따른 모든 것들도 타들어 갔다.

무위를 가장한 무능은 불타고 있으며, 그는 무력하게 붉은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후, 도달하지 못한 감정과 책임의 종착역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다이스케는 감정을 느끼지만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미치요는 억압 속에서 병들고, 히라오카는 감정을 외면하며 제도에만 순응한다.

세이고와 우메코는 전통에 순응하며 안정과 억제를 동시에 구현하고, 세이타로는 다이스케가 진입하지 못한 희망의 영역을 보여준다.

가도노와 데라오는 계급과 생존이라는 현실을 반사하며, 사가와의 딸과 나가이 토오루는 감정 없는 질서의 대표다.

이처럼 '그 후'는 메이지기의 인간 군상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당신은 감정에 따를 용기가 있는가" 묻는다.


'그 후'는 "감정"이라는 언어를 빌려 "윤리"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질문하는 작품이다.

다이스케는 우리가 감정과 윤리 사이에서 얼마나 비겁하게 서성이는지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존재다.

작품의 가장 위대한 점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도 악하지 않고, 누구도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선택이나 결단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결단하지 않은 상태 자체를 말한다.

그것이 이 소설이 '그 후'라는 모호한 시점을 제목으로 삼는 이유일까.

'그 후'란 시간이 흐른 다음이 아니라, 결정하지 않은 사람이 머무르는 정지된 시간이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준 걸까.


'그 후' 들은 곡.


Bad - James Bay

unshaken - d'angelo

Intrusive Thoughts - Natalie Jane

Demons (Philosophical Sessions) - Jacob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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