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의 태양은 다가오는가, 혹은 멀어지는가.
지평선의 태양은 다가오는가, 혹은 멀어지는가.
그 빛은 뱀처럼 길고 조용히, 내 삶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스친다.
한껏 몸을 낮춘 채 태양을 응시하는 뱀은, 몰락을 기다리는 자의 형상이었고,
동시에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려는 자의 침묵이었다.
'사양'은 그런 뱀의 이야기였다.
죽음을 품은 채 천천히 태양을 향해 나아가고,
마침내 자신만의 빛을 품게 된, 한 여자의 기록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斜陽)'은 전후 일본,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의 궤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몰락의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죽음과 상실, 부끄러움과 절망을 끌어안고도 끝내 삶을 선언하는 존재, 가즈코를 통해 다자이는 '몰락의 내부'에서 다시 '탄생'을 말한다.
전쟁이 끝난 일본, 역사의 중심에서 한 발짝 밀려난 귀족 가문은 조용히 붕괴하고 있다.
주인공 가즈코는 그런 몰락의 한가운데에 있다.
한때 도쿄의 호화로운 저택에 살던 이 가문은, 가즈코와 어머니, 단 둘이 시골의 산장으로 이주한다.
진짜 '귀족'같던 사랑스러운 어머니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병세가 악화되어가고, 동생 나오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돌아와, 점점 파괴되어간다.
가즈코는 어머니를 돌보며 소멸해가는 가문의 잔해 위에서 당차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그녀는 과거 도쿄에서 만난 소설가 우에하라를 기억하며, 편지를 보낸다.
그는 유부남이며, 나오지의 친우였던 인물이지만, 가즈코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은 사회적 도덕을 넘어서 있었고, 가즈코는 그와의 관계를 통해 과거의 전통, 여성에게 부여된 품위와 정절이라는 허울을 떨쳐버리려 한다.
한편 나오지는 점점 무너져간다.
귀족이라는 껍데기는 남아 있지만, 그는 더 이상 이 시대에 자신이 설 자리가 없음을 안다.
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깊어지고, 나오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마지막 유서에는 자조와 무력함, 허무 속에서도 어딘가 애절한 체념이 배어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 가즈코만이 남는다.
어머니는 죽었고, 동생은 자살했고, 우에하라는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는다.
도리어 그 황폐한 자리 위에, 새로운 삶을 잉태한다.
가즈코
내면에는 몰락한 귀족 계층이 겪는 비애와 상실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결단과 희망도 존재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삶과 가치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면서도, 그 가치가 더 이상 현실에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과감히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이러한 점에서 가즈코는 구시대의 끝과 신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 놓인 존재로 읽힐 수 있다.
어머니
가족 구성원들에게 과거의 권위와 가치의 상징으로서 존재한다.
나오지와 가즈코가 그녀를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도, 그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을 어머니의 고고한 품위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존엄과 정체성의 상징적 뿌리이며, 결국 그 뿌리가 사라짐으로써 가족은 해체되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나오지
귀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내면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패배와 사회적 변화로 인해 이 정체성은 아무런 현실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나오지는 삶의 목표와 의미 또한 상실하게 된다. 그는 이 공허함을 알코올과 마약을 통해 채우려 하고, 퇴폐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삶으로 빠져든다.
이런 그의 삶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시대와 사회에서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에하라
전통과 질서가 붕괴한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무책임을 가장 뚜렷하게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가즈코와 나오지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지만, 그 자신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방관자적이고 퇴폐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그 모습은 시대의 혼란과 함께 가치관이 무너진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무기력과 허무주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전후 일본의 몰락한 귀족 가문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천황제 유지 하에서 민주화, 경제 재건, 농지 개혁 등 대대적인 사회 개편이 일어났고, 그 가운데 귀족 계급은 법적으로도 해체되고 실질적으로도 몰락했다.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복합적이었다.
동정과 애도의 시선, 일부 대중은 몰락한 귀족들에게 일정한 동정을 품었다.
일본 의 전통과 문화의 상징으로서 귀족 계급은 오랜 세월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의 몰락은 한 시대의 종말처럼 여겨졌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삶이 뒤흔들린 국민들은, 전통을 잃은 채 방황하는 귀족 가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상실감을 투사하기도 했다.
비판과 조롱의 시선, 한편으로는 귀족 가문이 패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인식도 강했다.
대중은 그들을 일본 제국주의 체제의 수혜자로 보았고, 몰락을 일종의 응징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특권 계층에 대한 반감은 조롱과 비판으로 나타났다.
낭만적 향수와 문화적 재현, 몰락한 귀족 가문은 문학과 영화, 예술 작품에서 자주 다뤄졌으며, 이들은 일종의 낭만적 상징으로 재구성되었다. 현실 속에서는 사라져가는 존재였지만, 대중문화 속에서는 우아하고 비극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가즈코의 선택은 '자유'인가, '도피'인가.
가즈코는 전통적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정해진 역할과 도덕을 지키며 살아야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몰락한 가문 속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부과된 역할과 전통적 가치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이런 점에서 가즈코의 선택은 명백히 자유의지를 드러낸다.
그녀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우에하라와의 관계를 통해 기존의 사회적 틀을 깨고자 한다.
그녀는 더 이상 어머니와 같이 몰락한 귀족적 이상을 고수하지 않고, 나오지처럼 허무에 빠지지도 않는다.
대신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하려 한다.
가즈코의 선택은 분명히 자유를 향한 용기 있는 도전이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능동적으로 창조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반면, 가즈코의 선택은 현실에서의 도피라는 관점에서도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
그녀는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몰락한 귀족으로서의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 우에하라를 선택한 면이 있다.
우에하라는 책임지지 않고, 현실에 무감각하며, 퇴폐적이고 냉소적인 인물이다.
가즈코가 하필 그런 우에하라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려는 선택을 한 것은, 결국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게다가 그녀는 어머니와 나오지가 대표했던 과거의 가치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보다는 타인의 존재에 기대고 있는 상황이다.
우에하라의 아이를 낳는 행위 자체가 가즈코 스스로의 독립된 가치 창조라기보다는, 어쩌면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삶의 모호한 전환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선택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현실을 견디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한 도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머니의 마스크는 존엄인가, 회피인가.
어머니는 진정한 의미의 귀족으로, 마지막까지 귀족적 품위와 존엄을 유지하려 노력한 인물이다.
그녀가 마스크를 쓰는 행동은 외부 세계의 추악함과 몰락의 현실에서 자신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보호하려는 상징적 행위다. 그녀는 귀족적 가치가 시대의 변화로 인해 더 이상 현실적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고수하려 했다.
마스크는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현실과의 거리를 두면서, 그녀 자신을 지켜줄 마지막 보호막이 된다.
어머니가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이상과 존엄을 지키려는 행위로 본다면, 마스크는 그녀의 고귀한 정신과 자존심의 표현이자 최후의 품위 있는 저항으로 읽힐 수 있다.
한편, 마스크는 현실과의 단절이자,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회피의 행위로도 볼 수 있다.
어머니가 마스크를 쓴 것은 결국 시대의 변화와 가문의 몰락을 직시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녀는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자신만의 이상 속에 숨어들어간다.
어머니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대신, 눈을 감고 자신만의 귀족적 가치를 고집함으로써 변화에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려 한다. 그녀의 마스크는 삶의 고통과 상처, 현실의 몰락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적인 태도이며, 결국 시대착오적 가치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는 상징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나오지가 우에하라와 농민 출신들, 자신과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왜 어울렸나.
그는 자신이 속했던 귀족 계급의 몰락을 이미 체감하고 있었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거나 혹은 자신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다른 집단과의 접촉을 추구했던 것이다.
특히 우에하라는 나오지에게 기존의 가치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롭고 퇴폐적인 삶을 제시하는 인물이었다. 나오지에게 우에하라의 존재는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가진 내적 허무와 공허를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기혐오와 자기 처벌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는 과거의 자아를 잃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히려 더 극단적이고 퇴폐적인 집단과 어울림으로써 자기 파괴적 욕구를 실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몰락을 의도적으로 더 심화시켰으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을 끝까지 낮추고 몰락시키려는 무의식적인 충동을 드러냈다.
가즈코는 왜 우에하라에게 끌렸나.
우에하라를 사랑하게 된 것은 단순한 감정적 끌림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있어 자유와 금기의 상징이었다.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가즈코에게, 우에하라는 퇴폐적이지만 기존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인물로 다가왔다.
그는 가즈코에게 감정의 해방, 욕망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존재였다.
또한 나오지와 어머니의 몰락 속에서 유일하게 '다른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인물이었기에, 그녀는 그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매달렸던 것이다.
가즈코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시대적 굴레를 벗어나려는 실존적 투쟁이었다고 본다.
다자이 오사무는 네명의 인물에게 무슨 모습들을 투영했나.
나오지에게는 작가 자신의 허무주의와 자멸적 충동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 다자이도 약물 중독과 반복적인 자살 시도를 겪었으며, 나오지처럼 시대의 중심에서 밀려난 인물이었다.
우에하라는 다자이 자신의 문인이자 인간으로서의 모순된 자아, 즉 지식인적 자의식과 방탕한 삶 사이에서의 괴리를 상징한다.
어머니는 작가가 품고 있던 전통적 가치에 대한 애증을 담고 있으며, 가즈코는 다자이의 재탄생에 대한 열망, 과거를 넘어서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투영된 인물이다.
나는 이 네 인물 모두를 통해 다자이가 자신의 복잡한 자아를 해체하고 분산시켜, 시대와 인간 존재에 대한 총체적 성찰을 시도했다고 본다.
가즈코는 왜 아이가 태어나면 나오지의 아이라고 말해달라고 했는가.
이 장면은 단순한 거짓 진술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오지는 죽었고, 그는 구세대 귀족의 몰락과 허무를 상징한다.
그러나 가즈코는 그 죽음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단절하기보다, 그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잇고자' 한다.
그녀는 우에하라라는 불안정하고 무책임한 인물의 이름보다는, 가족 내부의 연속성을 가진 상징으로서 나오지를 택한다.
이 선택은 가즈코가 과거를 부정만 하기보다는, 그것을 품고 새롭게 탈바꿈시키려는 일종의 재창조의 의지로 본다. 또한 이는 당시 사회의 도덕적 시선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결정이기도 하다.
그녀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가즈코는 왜 아이를 가지고 싶다했나.
단순히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무너진 시대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가즈코는 귀족이라는 과거의 정체성과 도덕을 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고자 한다.
'아이'은 생물학적인 후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윤리와 존재 방식을 상징하는 은유다.
절망의 시대 속에서도 인간은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다자이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본다.
우에하라는 그 시대에 실망하여 재가 된 인물인가.
우에하라는 전후 일본의 혼란과 가치 해체 속에서 실망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만 충실한 삶을 택한 인물로 보인다.
그는 과거의 이상도 미래의 비전도 믿지 않으며, 무책임함과 냉소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단순히 타락한 인물이 아니라, 이상이 무너진 시대 속에서 어떤 희망도 품지 못한 채 스스로 '재가 되기로' 선택한 인물이라고 본다. 그의 퇴폐는 시대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며, 동시에 변화에 대한 저항이 아닌 체념의 자세다.
다자이는 우에하라를 통해 전후 일본 지식인 계층의 윤리적 붕괴와 심리적 황폐화를 통찰하고 있다.
어머니는 어떤 인물보다도 인상 깊다.
단순히 몰락한 귀족이 아니라, '귀족성 자체'가 인간화된 존재다.
그녀의 말투, 태도, 고통을 감내하는 방식은 모두 귀족적 미덕과 존엄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몸짓이다.
그녀는 마치 살아 있는 전통의 잔재처럼 느껴졌고, 그 고결함이 이토록 처절하고 고립된 모습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현실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과정은 조용한 저항이자 고독한 순교처럼 그려진다. 다자이는 어머니를 통해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과 '더는 회복될 수 없는 이상'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모두 담아냈다.
그녀의 죽음은 몰락의 종결이자, 아름다움의 퇴장으로 기억된다.
나오지의 유서.
단순한 이별의 글이 아니다.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무력함, 세상에 대한 환멸, 자신을 지탱해주지 못한 귀족적 자의식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다.
유서를 읽으며, 나오지가 단지 허무주의자나 약자가 아니라, 끝까지 삶의 의미를 찾으려 몸부림쳤던 인물이었음을 느꼈다. 유서는 감상적이지 않고 차분하지만, 그 절제 속에 담긴 절망은 오히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나오지는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은 도피가 아니라 시대와 자신 모두에 대한 최후의 진술이었다.
'인간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절망과 희망은 공존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지만 '사양'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이야기이자,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자아를 잃고 방황하는 개인들의 이야기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전쟁 이후 무너진 가치 체계와 그로 인해 붕괴된 인간 내면을 섬세하고 깊이 있는 필치로 표현해냈다. 특히 작품의 인물들은 각자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에서 고통받고, 그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절망하거나 도피하고 만다.
가즈코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희망을 상징하면서도,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 채 과거와의 경계에서 계속 방황하는 인물이다. 나오지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고, 어머니는 과거의 귀족적 존엄을 유지하려다 결국 시대에 밀려 사라져가는 인물이다. 우에하라는 이 모든 인물들과는 달리 현실을 회피하며 퇴폐적인 삶으로 일관한다.
나는 이 인물들이 시대의 희생자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개인적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사양'의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대적 변화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자신을 지키려 하지만, 현실과의 타협에 실패하고 고립과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인간 존재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얼마나 취약하고 무력할 수 있는지를 생생히 드러낸다.
하지만 다자이가 단지 절망과 몰락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가즈코가 ‘아이’을 잉태하고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였듯, 이 작품은 절망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사양'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자이는 몰락의 시대에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양족'을 생각하며 들은 곡.
Lost on You -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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