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유년시절 초등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집 전체에 쿠키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어떤 날은 모자이크 모양의 버터 쿠키였고, 어떤 날은 식빵으로 만든 토스트 피자일 때도 있었다. 그때 엄마는 아마 베이킹 수업을 다니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랑 동생이 학교 끝날 때쯤 우리에게 줄 간식을 부지런히 만드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배운 거 복습한다고 연습 삼아 이것저것 만들어 보셨던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갓 나온 뜨끈뜨끈한 쿠키는 기가 막히게 입에서 살살 녹았고, 뜨거운 오븐 안에서 식빵 위의 치즈가 몽글몽글하게 부풀어 오르는 걸 보기만 해도 설렜다.
소풍 가는 날 앞치마를 두르고 김밥을 싸는 엄마의 뒷모습, 손님들이 놀러 오시기라도 하면 커다란 갈색 상이 거실 한가운데 딱 펴지고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부엌 모습, 퇴근한 아빠 손에 치킨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 분주히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부엌에서 수저를 챙겨 와 다 같이 TV를 보며 치킨 먹을 준비하는 것, 모두 아련하지만 따뜻함이었다. 다들 경상도 사람들이라 사랑한다, 좋아한다 따뜻한 말 쑥스러워 못해도 부엌의 온기는 말 대신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나는 부엌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조그마한 부엌은 꼭 나를 위한 아지트처럼 편안하다. 봄에는 제철 맞은 봄나물들을 잔뜩 사 와서 가족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하고, 여름에는 함께 먹을 수박을 자르고, 가을에는 나를 위해 따뜻한 차를 내리고 겨울에는 고구마를 굽는다. 부엌에서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고, 마실 차와 커피를 준비하는 모든 행동들이 가족과 나 자신에 집중하고,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그런 따뜻한 위로이고 온기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 지금은 훨씬 더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라서 밀키트도 잘 발달되고 식재료도 워낙 깔끔하게 손질되어 나오다 보니 부엌에서 있는 시간이 옛날 우리 엄마들 시대에 비하면 아마 거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을 것 같다. 바쁘고 피곤하면 배달 음식을 종종 시켜 먹고, 시간 없을 땐 냉동실에 있는 밀키트를 꺼내 휘리릭 준비한다. 빠르게 준비하는 만큼 부엌의 온기도 절반으로 줄었다. 학원 다니기 바빠서 삼각김밥이나 라면으로 한 끼 때우는 게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자라왔던 것처럼 우리들도, 우리 아이들도 다 같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오늘의 메뉴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밥 한 끼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부엌에는 보이지 않아도 온기가 있다. 갓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 모닝콜 대신 도마에 칼질 소리로 깨는 아침, 거의 엄마 몸통 절반만 해 보이는 냄비에 한솥 가득 끓기는 뽀얀 국물의 곰탕, 보글보글 된장찌개 소리들 전부 부엌의 온기다. 그리고 유년시절에 경험한 부엌의 온기는 생각보다 꽤 오래간다. 딱히 중요한 날도 아닌데 성인이 되어서 뭔가 마음이 팍팍하고 추울 때 그때의 기억이 투박한 갈색 봉투에 들어있는 구운 고구마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아마 부엌의 온기는 나를 돌보고 또 자식들을 위한, 가족을 위한 사랑인가 보다. 나도 우리 아이에게 그런 온기가 되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