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심장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아닐까

by 구름땅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과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다.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순수한 사랑을. 아이를 낳은 후에 나는 비로소 그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널 낳은 거야'같은 진부한 말도 아이를 낳아보면 백 번 천 번 이해된다.


아이가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서 제일 깊숙하고 안전한 곳에서 마음까지 고요해진다. 아이의 작고 작은 손과 발을 가만히 만지작거리면 마음속에 평화가 가득 퍼진다. 아이가 아프면 나도 마음이 아프고, 아이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진다. 문득 이 아이는 내 심장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아닐까-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이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내 심장이 이렇게 요동칠 리가 없다. 여태껏 경험해 봤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과 행복이다.


부모가 된 건 처음이라 완벽하지도 않은데 아이가 보기엔 작은 내 키가 키다리 아저씨처럼 크고, 힘센 슈퍼우먼이고, 잘 놀아주는 천사이고, 모든 걸 다 아는 똑똑 박사님이다. 아이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날도 많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일이 노력해도 안 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그렇게 아이는 나를 더 깊은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키우면서 점점 더 한 사람을 키우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느낀다. 하나도 어려운데 부모님들은 둘, 셋, 아니 더 옛날에 여섯일곱 어떻게 키우셨을까. 그러고 보면 옛날보다 요즘처럼 풍족한 사회에서 오히려 마음이 텅 빈 아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해마다 어린이 우울증이 점점 증가한다는데, 풍족할수록 부모의 기대치도 많아져 아이들이 해야 할 것,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마음에 병이 드는 것 같다. 부모가 조바심 내지 말고 최대한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게 아이를 위해서도 최선이지만 가끔 조바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존재만으로 아이가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떠올리자고 다짐해 본다.


유치원 등원 버스를 타고 가는 아이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마구 흔들어 인사해 주는 기쁨, 하원하고 온 아이를 꽉 껴안아 주며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기쁨, 아이가 좋은 꿈을 꾸기 위해 잠자리에 누워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는 기쁨, 내가 해준 밥이 맛있다며 엄마 최고라고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워주는 기쁨, 조잘조잘 대는 아이와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하는 기쁨, '엄마 좋아!'하고 백허그를 하며 딱 달라붙을 때의 기쁨, 침대에서 같이 뒹굴거리며 아이의 작디작은 손을 만지작 거리며 '그새 조금 더 컸네'라고 얘기하는 기쁨,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며 울컥하는 기쁨이다.


이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기쁨들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돈으로 살 수도 없다. 이 기쁨이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마음속 상자에 넣어두거나 기록을 해두는 방법 밖에. 육아 선배님들은 말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크면 클수록 정신적으로 힘들 거라고. 아이는 어렸을 때만 평생 효도 미리 다 하는 거라고. 벌써 걱정되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준 기쁨이 얼마나 컸었는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두고두고 꺼내 읽어야겠다.


존재만으로도 사랑인 아이를 키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험난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가 잘 커 갈 수 있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온실 속 화초처럼도 아니고, 링 위에 혼자 싸우게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고, 가능하면 바다에서 마음껏 항해하되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는 등대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 내 심장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완전한 심장이 될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때로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불안정한 사회에서도 뿌리를 내려 잘 자랄 수 있게 단단한 토양이 되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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