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직업을 위한 평생교육의 필요성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나에게 'PD수첩'은 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출근길에 우연히 접한 '은퇴 없는 나라'편은 특히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64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난 제2차 베이비붐 세대. 현재 50-60대가 된 이들의 은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마처시대'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부모와 자녀를 모두 부양해야 하는 이 '샌드위치 세대'의 삶의 무거운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대기업에 몸담았던 이들이 한순간 실직자가 되어 창업지원센터를 전전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모습은 내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20년 동안 '내 회사'라 여기며 헌신했건만, 돌아온 건 차가운 희망퇴직 통보라니. 대부분 고학력의 화이트칼라 직종에서 일해왔던 이들이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마주한 현실을 냉혹했다. 선택지는 주로 블루칼라 직종, 즉 몸을 써야 하는 일들이었다. 평생 컴퓨터 책상 앞에서만 일해 온 이들이 몸을 써야 하는 직업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모습은 나 또한 다시 구직활동을 해야 했던 때의 막막함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국회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10년 넘게 일하며 청춘을 바쳤다. 공무원과 거의 동일한 대우를 받았지만, 단 하나의 차이점이 있었다.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이로 인해 나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불안함을 느꼈다.
나는 27세에 국회의원실 인턴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대한민국 국회'라는 낯선 공간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건 행운이었지만, 그 10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신분 보장'이 안 되는 터라, 의원의 임기가 끝나면 나 또한 실직자가 되었고, 새로운 의원실을 찾아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모셨던 의원님이 낙선했을 때, 선거기간 후 떠나려고 예약해 두었던 유럽 여행(당연히 당선이 될 줄 알았는데, 의원님이 갑자기 지역구를 다른 후보에게 넘기며 중도에 선거를 포기했다.)을 취소하고 구직 활동에 매진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제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나는 운 좋게 새로운 의원실에 채용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이 상실되며 다시 실직의 문턱에 서야 했다. 국회에서 생활하면서 이런 일들은 일어나는 게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에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이러한 상황이 익숙하다. 나는 제20대 국회의 임기를 끝으로 출산을 하며 '경단녀'가 되었다. 출산과 함께 전업맘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운명은 의원의 당선과 낙선에 따라 그 직위가 흔들리다. 안정적으로 한 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게 긴장 속에서 보낸 10년의 경력은 다른 업계로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시 국회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워라밸이 힘든 환경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망설여졌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국회 동료의 추천으로 지금의 직장에서 새롭게 일을 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경력이 지금의 자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발전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현시점에서 준비 없는 은퇴는 제2차 베이비붐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누구나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각자의 역량에 따라 더 큰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시대라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에서의 불안정한 고용 경험 때문인지, 늘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어떤 경험도 헛되지 않다. 사소한 일이라도 결국 내 삶의 양분이 될 것이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달린다.
나의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를 위하여!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