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자 친구가 현 남편이 된 사연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이 계절.
어느 겨울날, 파스타향이 가득한 따뜻하고 아담한 이태리 식당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날 내 앞에 앉은 그는 선한 인상에 다정한 말투,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마음 한편에서는 연애의 가능성을 떠올리기보다는 그저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과 흥미로운 대화 주제에 집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에게서 온 뜻밖의 메시지가 나를 설레게 했다.
"잘 들어가고 있어요? 이번 주말에 뭐해요?"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취향과 생각 등을 공유하며 제법 잘 맞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잘 지냈다. 딱히 취미가 없던 나는, 소개팅남(등산과 백패킹을 취미로 가진)과 액티비티 한 취미활동도 함께하며,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어둑어둑해진 겨울밤, 별이 쏟아지는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그가 말했다.
"우리 진지하게 만나보면 어떨까?"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이제는 서로의 인생에 스며들어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 만나 인연이었지만, 서로에게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냐'는 호들갑을 떨며 연애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렇게 잘 맞고 사랑했던 그가 지금은 나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남편이 되어버렸다느 사실에 가끔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특히 임신기간에 내 인생에서 남편보다 더 사랑하게 될 존재가 생긴다는 생각이 낯설고,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은 남편이 그저 '짐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다.
독감에 걸린 남편을 걱정하기보다 아이들에게 옮길까 봐 노심초사하는 내 모솝이,
그리고 일과 육아 때문에 많이 지친 날을 더욱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을 '남의 편'처럼 여기게 된 내 모습에 미안함과 서글픔이 몰려온다.
오늘은 퇴근하고 들어오는 그를 환하게 맞이해 줄 생각이다.
그가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정성껏 끓여두고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해 줘야겠다.
그 겨울, 따뜻했던 우리의 날들을 가슴 깊이 기억하며.
"오늘도 고생했어. 내 신랑!"
202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