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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그 경계에서

돌봄이 필요한 나에게

by 권선생

아이 둘을 키우며 일까지 병행하다 보면, 시간은 바람처럼 스쳐간다. 내 몸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또 하루를 버텨낸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다 해내느냐"며 칭찬을 건네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거야.' 스스로 다독이며 긍정적인 마음을 지키려 애쓰지만, 문득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깊은 피로감이 묵직하게 밀려들 때가 있다.


둘째가 태어난 첫해엔 난 심신이 지치고 힘들어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의 나는 꽤 단단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힘든 날들이 더 많다. 어쩌면 힘들 날들을 외면한 채, 모른 척 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깊이 신경 쓰면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까 봐.


어젯밤부터 둘째의 기침이 심상치 않더니, 아침이 되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풀타임 근무일. 아이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소아과에 데려가야 했다.

아픈 둘째를 안고, 첫째의 작은 속을 꼭 잡고 병원으로 뛰어가는 길.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회사에 늦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과 둘째의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안도감이 뒤섞여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병원에 들렀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로 돌아와 오전 업무를 간신히 마치고 나니 며칠째 이어진 귀의 먹먹함과 어지러움이 다시 떠올랐다. 긴 명절 연휴 후유증일까, 아니면 다가올 긴 연휴(직장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황금연휴)를 앞두고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의아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무심히 넘기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난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만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을 대충 때우고 나는 병원으로 갔다. 이런저런 검사 후 나는 '대상포진'으로 인한 삼차신경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대상포진은 보통 많이 아프다던데 아픔마저 이긴 책임감인지 내 몸은 너무 무뎌져 있었다.

의사는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고, 컨디션도 안 좋으니 최대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라'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 말이 나는 왜 그렇게 낯설게 들릴까. 몸에 필요한 영양을 채우고, 충분히 쉬고, 편히 잠드는 것. 그것이 얼마나 기본적인 것인지 알면서도, 이제는 그 기본조차 지키기 힘들어진 나의 일상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내 삶의 가장 큰 축복임을 알면서도 그 축복이 내 삶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뭐든 잘하려면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정작 나는 그 기본조차 놓치고 있었다. 직장에서는 업무에 집에 와서는 아이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니, 나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나의 행복이라 믿었지만, 그 안에 나는 언제나 외면당하고 만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나를 처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얼마나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 깨달았다.

'앞으로는 나를 위한 시간도 챙기자.'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한 작은 약속을 해본다.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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