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well) 육아월드'를 꿈꾸며
싱글일 때, 연차는 온전히 나를 위한 날이었다. 평일에 할 수 없어 미뤄두었던 은행 업무 등을 처리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그저 집에서 온전히 휴식을 취하며 업무에 지친 나를 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워킹맘이 된 후 나의 연차는 이제 오롯이 아이들을 위한 '육아 연차'가 되어버렸다.
나는 복직이 아니라 이직을 했기 때문에, 복직 첫 해에는 연차조차 없었다. 그 대신 근로기준법상 '월차'라는 유급휴가가 있었다. 한 달에 하루씩 쌓이는 월차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두 아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감기와 같은 사소한 잔병치레가 잦고, 계절마다 찾아오는 유행성 질병(수족구, 노로바이러스 등)에도 자주 노출되었다. 한 명이 아프면 다른 한 명도 곧이어 아프기 마련이라 나의 연차는 주로 병간호로 모두 소진되곤 했다.
영유아 검진, 어린이집 학부모 상담 및 참여 수업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부모의 활동들도 연차를 필요로 한다. 여름과 겨울에는 학기 방학이 있어 대부분의 보육 기관이 휴원하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반씩 나눠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집에서는 육아에 전력을 다하는 일상. 이러한 현실에서 부모인 우리는 도대체 언제 쉴 수 있는 걸까? 정말로 '철인'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요즘 많은 신혼부부들은 딩크를 선언하며, 아이 낳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나의 소중한 월차도 반으로 나눠 쓰고, 아껴 쓰며 아이들을 위한 일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싱글 시절이 그리워질 만큼 한탄스러운 순간들이 많다.
최근 정부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있지만, 주변에서 그리 흔하게 쓰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열에 아홉은 여전히 엄마가 육아휴직을 쓰고, 그 마저도 어렵다면 할머니가 엄마를 대신해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에는 육아휴직을 단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가 발표되었다. 실제로 모든 직장에서 이 제도가 적용될 수 있을까? 그 실효성에 의심이 생긴다. 그저 제도가 도입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것이 실제로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 진정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신생아 대출, 출산 축하금 등 일시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지원보다 부모들이 육아를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게 '육아 연차'를 추가로 지원하는 정책이 도입된다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도 숨을 쉴 수 있는 그런 환경이야말로 진정한 저출산 대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 아이를 낳은 전 직장 동료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우스갯소리로 '헬(hell) 육아월드' 입성을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웰(well) 육아월드'가 되길 꿈꿔 본다.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