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벽'을 읽으며
「어느덧 당나귀의 등은 굽어 가고 딱딱해져 간다. 딱딱해질 때까지 피나고 곪고 다시 새살이 돋고 파리들이 왜애거렸다.
당나귀는 그것을 모른다. 자기가 아팠는지 딱딱해졌는지, 그가 꾸는 꿈처럼 처음 같은 색깔이고 처음 같은 피부일 거라고 알고 있다.
당나귀가 헤치고 나아온 게 짐인지 세상인지 시간들인지 손가락질인지 파란 바다인지 새벽안개였는지 차가운 냉대들이었는지 모른다. 당나귀에겐 그저 꿈이 중요하다. 아니, 짐이 중요하다. 이젠 짐을 져서 꿈을 꾸는 건지, 꿈을 꾸기 위해서 짐을 져야 하는 건지, 그것도 모르겠다. 당나귀에겐 꿈도 짐이고 짐도 꿈이다.」
- <제4의 벽> 배우 박신양, 철학자 김동훈 지음 中에서 -
몇 년 전, 배우 박신양 님이 미대에 진학한 소식을 뉴스에서 접했다. 연기파로 유명한 그가 그림에도 취미가 있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하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박신양 님의 근황을 접하게 되었다. 벌써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활동한 지 10년을 맞이하여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었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와 그가 새로운 도전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과 생각이 담긴 책을 주문하여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절반도 읽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이나 문체는 연기만큼 심오하고 그만의 고유한 철학이 있다. 자신만의 질문들, 그림을 통해 표현하는 의미, 그리고 예술에 대한 솔직한 견해가 담겨있었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며, 그 사물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솔직히 풀어낸 그의 글에서 나는 잔잔한 울림을 느꼈다.
'철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 즉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나귀와 관련된 내용을 읽으면서 나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들이 생겼다. 그로 인해 때때로 아이들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마치 짐을 지고 있는 당나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짐'이 생겼기에 내게 새로운 꿈도 생기고, '짐'이 없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행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나 역시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당나귀에게 '꿈'도 '짐'이고 '짐'도 '꿈'이듯,
나에게 '아이들'이 '행복'이고 '행복'이 곧 '아이들'인 듯 말이다.
202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