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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끝이 없다.

나를 성장시키는 삶

by 권선생

어린 시절부터 특별히 두드러지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에서 임원을 맡고, 중상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며 나름대로 성실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욕심도 있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이었고, 공부를 곧잘 했던 오빠의 수준에 맞춰 나도 진학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중학교 3학년 때 연합고사 준비를 할 때, 나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그 결과, 꽤나 공부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원하던 목표를 이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핑계로 스스로를 풀어줬던 걸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업보다 동아리 활동 등 다른 일들에 더 열중했다. 결국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건, 고3이 되어서야 다시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이었다.


대학은 수능 점수에 맞춰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 점수로는 인서울 대학에서는 가장 낮은 학과, 수도권 대학에서는 원하는 학과, 비수도권 대학에서는 일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 시절, 지방 국립대 심리학과 진학을 고민했지만, 당시만 해도 심리학이 학문적으로 확고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고, 부모님의 반대도 컸다. (돌이켜보면 심리학과보다는 '지방'이라는 점이 더 큰 걱정이셨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부모님과 나의 의견을 종합하여 다른 학과를 선택했다.


사회에 나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부딪히면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심리학을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마는 바쁜 일상 속에서 깊이 있게 학습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나는 첫아이를 출산했다. 그전에도 '사스'같은 전염병이 있었지만, 아이를 품에 안고 나니 새로운 질병에 대한 불안함의 크기가 달랐다. 친정을 오가는 것 외엔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첫째는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던 것 같다.


출산 전까지 계속 일을 했던 터라, (임신 38주 차까지 일을 했다.) 육아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다. 아이의 발달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이 중요한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다. 아이의 성장에는 단계가 있고, 그 과정을 차례차례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태어나기를 작게도 태어나고, 입도 짧았던 터라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자라는 줄만 알았다.


둘째가 태어난 후에야 첫째에 대한 걱정이 시작됐다. 동생이 태어나지 전에는 어른들의 말도 잘 이해하고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도 가능했는데, 둘째가 태어난 후부터 자신의 감정을 울음으로만 표현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생긴 첫째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퇴행'이 온 것이다.


그제야 바쁘다는 핑계로 쌓아두기만 했던 육아서적을 펼쳤다. 그리고 유아 발달에 대해 하나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첫째의 마음도 궁금해졌다. '왜 저런 표현을 할까? 지금은 어떤 감정일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를 키우면서도,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내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것이 첫째의 발달과 관련하여 더 크게 체감하며 마침내, 오랫동안 간직했던 심리학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안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사회에서는 직장인으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틈틈이 공부를 했다. 그렇게, 드디어 올해 심리학 학위를 취득했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참으로 값진 성취였다.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나에게, 힘찬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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