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도시 소식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고력이 커진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표현과 처음으로 가져본 생각을 이렇게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지! 나는 지식 함양을 위한 독서보단 생각과 삶의 방식을 접하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에세이가 좋다. 그중 무엇이 되기 위해 사실만 의거한 방법론보다도 작가의 시선이 진득이 녹여져 있는 분신과도 같은 책을 선호한다. 저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글을 썼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어떤 감정을 기록하고 싶었을까? 하는 사소한 호기심에서 발단되지 않았나 싶다.
모든 것이 똑같지만, 읽을 거리를 위한 투자를 은근 무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독서는 ‘돈’보다 ‘시간’에 대한 지출을 고려야해야한다. 엄청난 독서 애호가도 아닌, ‘좋아해요’라는 축에서 아주 밑단의 미미한 수준인 나도 시간 지출이 부담스러운데, 독서가 남일인 사람에겐 어떠할까? 독서에 대한 ‘돈’투자는 해결하기 은근 쉽다. 1인 미디어 시대다 보니 검색만 해도 웹사이트에 읽을거리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하지만 ‘시간’은 대체할 것이 없다. 시간을 들여 읽었지만 뜻한 바가 아니었다는 것, 중도 포기하자니 여태 읽은게 아까워서 한번은 완독해야겠다는 오기도 생기더라. 여튼 내가 원하는 밀도를 가진 글을 찾기 위해선 시간을 들여야 한두 개가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마음에 드는 읽을거리를 발견하면 그날은 온종일 텅 빈 마음에 글자와 문장을 쌓아두기 바쁘다. 어찌 소화할지는 대책도 세워두지 않은 채 무작정 읽어보고 잊어버린다. 휘발을 방지하기 위해 또 무작정 기록해둔다. 그러다 보면 어쩌다 생각난 글감에 토막 난 글도 술술 쓴다.
최근 나는 역량 개발을 위해 잭 트라우트의 포지셔닝을 구매했다. 마케팅의 바이블이라 일찍이 웹에서 만나는 자기 계발 크리에이터에게 추천받은 책이지만 인제야 읽는 중이다. 그런만큼 재미는 없다. 내 지식수준을 갈무리하며 기본 지식을 적립하는 ‘공부’ 목적이라 내 흥미를 끌기엔 뭔가 약하다. 그러다 책과 같이 배송 온 종이 쪼가리가 눈에 띄였다. 팸플릿이었는데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방치하다 대청소를 하는 김에 펼쳐봤다. 신간 도서 소개려니 했건만, 나름 발행부수도 꽤 있고 목차에 읽을거리가 있었다.
팸플릿은 굉장히 컬러풀하고 부드러운 종이 질감을 가졌다. 칼럼마다 카피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분량도 적고 쉽게 읽힌다. 글마다 개인의 방식을 풀어낸 인사이트가 있다. 글의 주제가 확실하다. 주제도 다양하다. 이렇게도 책 광고가 되는구나! 코너마다 쉬이 지나칠 수 없어 간단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포지셔닝은 글을 읽다 글자만 읽어 벌써 여기까지 읽은 거야? 하고 다시 돌아간 데, 이건 글을 읽고 또 읽고 기록하느라 더디다. 그러다 기분도 내켜 지금처럼 글도 쓴다.
이 글을 쓰게 된 원동력은 ‘파주 출판도시 소식’ 2022 + Spring = Vol, 16 덕분이다. 요근래 읽었던 글 중에서 살아있는 감각으로 접한 읽을거리다. 정적이고 멈춰있는 종이 위에 쓰여 있는 검은 글자가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기분이란! 마무리로 발행인의 글 중에서 유독 공감됐던 단락을 남기며 이만 마치겠다.
사랑하게 될 거야, 잘 볼 수만 있다면 | 공백 북튜버
혐오에 대항하는 마음으로 낯선 존재들의 실제를 살펴보기로 했다. 무엇이든 자꾸자꾸 보다 보면 사랑이 샘솟기 마련인지라, 나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오래도록 그것들을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면 잘 살펴보는 사람은 잘 사랑하는 사람과 다름없다. 바람봄의 기술은 곧 사랑의 기술이므로, 나는 작은 것들에도 주목할 수 있는 사람들, 곰곰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한다.
일상을 바라보는 화소 높이기 | 공백 북튜버
과학은 타자의 존재와 그가 속한 세상의 원리들을 속속들이 알아봄으로써 지식의 외연을 넓히는 학문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바라봄’의 순간이 전제된다. 제대로 볼 줄 몰라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끔은 이 책들에 담긴 곰곰한 시선을 빌려와 보면 어떨까. 세상을 바라본느 눈의 화소가 훌쩍 높아질지도 모르니까. 그럼으로써 더 많이, 더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까.
독서충 책꽂이 탐방기 | 오학준 SBS PD, 김홍식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종이 묶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진심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 - 치킨, 돈, 시계, 다이아몬드, 아파트 - 를 손에 넣기 위해 치고받고 싸울 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식욕과 신용, 사치와 권력 대신 생명과 역사에 눈길을 돌린다.
벗겨놓으면 개나 말이나 인간이나 다 같이 눈과 코, 귀와 입, 생식기, 다양한 털을 가지고 있는 똑같은 짐승이지만, 오직 인간만이 척학과 사상, 예술과 상상, 창조와 뭄명을 이룬 까닭이다. 머릿속을 채우고자 끈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란 말이다.
독서충 책꽂이 탐방기 | 오학준 SBS PD, 김홍식
세상에 대한 고민, 그리고 생각이 어떠한 연유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도외시하고, 여기에 나온 낱말, 문구만을 해독해서 네 입으로 나열한다면 그건 현학적인 허세일 뿐이란다. 앞으로 삶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 관계 속에서 우위를 접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가급적 피하는게 좋겠지.
내가 모르는 세계에 잠시 머무르는 일의 기쁨 | 양혜영
그냥 다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서로의 영역에 닿는 것을 갈수록 더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이지만 이상하게도 책에서는 모두가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자기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어디에 전념하는지도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이상할 정도로 깊게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