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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anna 리애나 Dec 06. 2023

역이민 고민하게 만드는 호주 이민 이상과 현실

호주에 오기 전 꼭 알아야 할 호주생활 단점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하며 두바이에 살던 나는 일을 하며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두바이는 외국인에게 절대 영주권을 주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나니 가정을 꾸려 두바이에서 평생 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평생을 하기에는 육체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정착해 살 나라와 직업 모두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한국어를 못 하고 한국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남편은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아 했다. 나도 또한 남편의 나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나에게 너무 생소했고, 안전과 치안 문제에 있어서 걱정이 됐다. 


그렇게 앞으로 살 나라를 결정하던 중, 나의 신나고 즐거웠던 호주 워홀의 기억들과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 문화권이지만 아시안들이 꽤 많이 살아서 한국인인 나에게도 적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는 이유를 바탕으로 호주로 가기로 결정했다. 호주 워홀 때처럼 신나고 재밌겠지?라는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탔다.


그러나 워홀로 잠깐 놀러 왔던 호주와 실제로 호주에 삶을 꾸리는 건 엄청난 차이였다. 호주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렌트(월세)를 구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우리는 그걸 바로 깨달았다. 부동산에 가면 여러 집을 보여주고 선택하는 방식의 한국과 두바이와는 달리, 오픈하우스 날짜에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서 구경하는 방식의 호주 렌트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보다 더 충격인 건, 렌트를 구하는데 대기업 면접과 같은 까다로운 서류 심사를 거친다는 것이었다. 전 렌트 히스토리부터, 통장에 얼마가 있는지, 직업은 뭔지, 신원을 확인할 서류를 100점에 맞춰 내야 하고, 보증인에게 전화나 이메일을 보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절차까지.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에 엄청난 지원자들까지 있으니, 렌트 히스토리나 직업이 없는 호주에 막 도착한 우리가 뽑힐 확률은 당연히 없었다. 이러다 정말 집을 못 구해서 길에 나앉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집을 보러 다니며 월세 집 경쟁에 참여하고 부동산에서 제시한 금액보다 더 높게, 3개월을 선납으로 내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작은 아파트를 렌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주에서도 한국처럼 전세제도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전세제도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옆에 있으면 감사할 줄 모른다고, 해외에 나와보니 한국의 장점들이 하나씩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




이민가능 직업군에 내 전공이 있어 나는 전공을 다시 살려 공부를 이어서 하기로 했다. 나는 이미 내 전공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었다. 나는 기억도 나질 않는 내 전공 공부를 그것도 영어로 해야 했기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남편은 호주에서의 경력이 없었기에 일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호주에서는 인맥이 아주 중요하다. 새로운 직장을 구할 때도 전 직장의 레퍼런스, 즉 추천서가 필수다. 만약 인간관계가 싫어, 한국의 인맥사회가 싫어 호주로 온다면 적극적으로 비 추천한다. 호주는 한국보다 더 인맥이 중요하고, 렌트에도 직장에도 심지어는 자격증 시험에도 모두 레퍼런스(추천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맥관리를 아주 잘해야 한다.


아주 쉽게 호주에 정착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오만을 비웃듯, 남편은 3개월이 넘게 취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에 150만 원이 넘는 월세를 내며 수입이 없는 채로 3개월이 지났다. 가지고 온 돈은 떨어져 가고 우리는 각자의 고국을 두고 호주라는 생판 모르는 나라에 이민을 결정한 걸 후회했다. 


그렇게 생활비가 부족해 전전긍긍하던 차에 남편이 취직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느 외국인 노동자의 고된 해외살이 정착기처럼 악덕사장을 만났고, 최저시급 이하의 월급과 당연하게 내줘야 하는 Superannuation(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를 내주지 않았으며, 일하다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았다. 외국인 신분이었던 우리는 영주권이 없으면 병원비가 엄청나게 나온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에, 병원비가 무서워 약국에서 응급처치로 약과 붕대를 사서 지혈을 했다. 남편의 다친 손을 붕대로 감아주며 나는 밤새 엉엉 울었다. 한국이었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국민으로서의 혜택도 못 받는 이 타지에서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걸까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호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는 렌트 구하기, 운전면허증 바꾸기와 같은 사소한 것부터 호주 연금, 세금, 보험과 같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배워야 했다. 호주는 한국과는 다르게 모든 게 느렸고, 한국에서는 바로 해결될 일이 며칠 심지어는 몇 주씩 걸리는 호주 서비스에 학을 뗐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지고 아시안인 나는 인종차별도 많이 겪었다. 길을 걷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미친놈부터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기 싫어 얼굴을 찌푸리던 사람들까지. 그래서인지 나는 점점 위축되고 사람이 무서워지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도 있었지만 먹고살기 급급했던 우리는 호주 도착 후 3년 동안 한국에 가지 못했다. 내가 호주에 있는 동안 내 여동생은 조카를 낳았고 가족들의 생일과 친구들의 결혼식등 경조사에 나는 당연히 참석할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에 나는 없었다. 


사진과 영상통화로만 함께 하던 순간들


심적으로 우울한 와중에도 나는 영주권을 위해 영어공부를 해야 했다. 정말 자는 시간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방학 동안 매일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공부를 했다. 졸업만 하면 바로 직장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100개가 넘는 이력서를 냈고 단 2곳에서 연락이 와서 면접을 봤지만 떨어졌다. 당연했다. 외국인 신분에 비자도 불안정하고, 호주 내 경력과 레퍼런스도 없으니 굳이 나를 뽑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운 좋게 그 망할 코로나가 좋은 기회가 되어 코로나 검사를 하게 되면서 필수인력으로 영주권을 운 좋게 바로 받을 수 있었다.


영주권을 받고 호주에 직장도 얻고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이방인 같은 마음이 들어 늘 마음 한편엔 공허함과 외로움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한국에 살았어도 100% 만족하며 살았을까?


내가 호주에 살기로 결심하고 호주에 왔건, 한국에 남기로 결심하고 한국에 남았건, 각기 상황에 따른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건 분명하기에, 나는 과거의 내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내가 미래에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소소한 것들에 집중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누가 나에게 호주 이민 가려고 하는데 어때?

라고 물어본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익숙한 내 나라를 떠나 새로운 나라에 정착한다는 건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잘, 정말 잘 생각해 보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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