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anna 리애나 Dec 06.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주에 산다

내가 호주에 사는 이유, 호주생활 장점


이 전의 포스팅에서 다뤘던 호주 단점들 외에도 호주에 사는 건 많은 단점들이 있다. 느린 일처리, 친절하지 않은 서비스, 일찍 문 닫는 가게들,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배우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까지. 


하지만 위의 호주 단점들을 뒤집으면 호주의 장점이 된다. 느린 일처리는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사실, 우리가 답답해서 그렇지 바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일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일들은 좀 기다려도 상관이 없고, 특히 서비스적인 관점에서 음식이 늦게 나오거나 배달이 좀 늦어도 조금만 기다리면 해결될 일들이다. 그래서 호주에서는 대부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주기 때문에, 내가 손님이 아닌 직원의 상황이 되면 이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또한, 한국처럼 손님이 왕이다라는 서비스 문화가 없기 때문에 갑질이라는 표현 자체가 없으며, 갑질이 일어나도 직원들은 당당하게 맞서 반박하는 경우가 많다. 


술을 파는 펍을 제외한 대부분의 식당은 저녁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고, 카페는 그보다도 더 일찍 오후 4시 정도면 마감을 한다. 그렇기에 서비스 직종의 직원들은 그만큼 일찍 퇴근해서 개인 생활을 즐기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다른 직종의 직원들도 마찬가지로 회식이나 야근이 거의 없는 호주의 직장문화 덕분에 퇴근 후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과 가족을 위해 쓸 수 있다. 


호주의 직장문화는 수평적이다. 영어에 눈치 보다라는 단어가 없는 것처럼 회사에서 직장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의견이 있으면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말하고, 주어진 휴가와 병가는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 호주는 1년에 4주의 유급휴가와 10일의 병가가 주어진다. 4주를 한꺼번에 몰아서 모두 사용해도 되고, 따로 여러 번 며칠씩 사용하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미안하고 눈치 보여서 내가 아파도, 아이가 아파도 병가를 쓰기를 주저하는 한국과는 달리, 호주는 강아지가 아파도, 봄이라 알레르기 때문에, 혹은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등 아주 작고 사소한 이유로도 병가를 자연스럽게 쓰는 분위기다. 특히 호주는 가족을 우선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가족과 관련 있는 아주 사소한 이유라도 병가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국 사회문화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이유들로, 일보다는 당연하게 본인의 삶을 우선시하며, 병가와 반차를 당연하게 쓰는 호주의 직장생활 문화는 나에게


“나 자신을 위한 삶”

“삶에서 어떤 게 제일 중요한지”


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러한 문화의 연장선으로 노약자, 아이들, 장애인 배려가 아주 잘 돼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어디에 가도 장애인 시설이 잘 돼있어서 자연스럽게 혼자서 일상을 즐기는 장애인 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한 뉴스기사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길에 장애인 분들이 많이 없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하면서 이유를 궁금해하는 기사가 있었다. 한국에도 장애인 분들이 많지만, 혼자 다니기에는 시설이 잘 돼있지 않아서 집 밖에 나오기를 불편해하기 때문에 길에서 많이 볼 수 없다는 내용을 보면서 한국도 장애인 시설이 좀 더 일반화되어 많은 분들이 좀 더 편하게 집 밖을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또 다른 단점이자 장점으로는, 외국에 살기 때문에 이들의 문화와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찾고 배워야 했다. 물론 그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로 인해서 나는 훨씬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다. 호주에서는 나를 보호해 줄 부모님의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일까지 내가 직접 결정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며 내 삶을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호주는 또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만큼 개개인의 삶의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나이에 따라 꼭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부분 대학교에 가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춰 공부를 중단하기도 이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대학교에 가면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아닌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한국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좋은 직업"이라는 범주가 존재하지 않아서 학생 때 무조건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거치기보다는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의 적성이 뭔지에 따라 직업을 선택한다.


느리지만 여유로운 삶, 남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는 삶, 나이에 따라 짜인 인생루트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삶, 어떠한 외부적 조건에도 내가 그냥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주에 산다.


https://youtu.be/QJVJeqey9FI

작가의 이전글 역이민 고민하게 만드는 호주 이민 이상과 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