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9일(2)

by 홍진희

그 후로 다시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도로 공사가 있는 날에는 현장에 나갔고, 그날 받은 일당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일이 없는 주말이면 전날 술을 마시고 늘어지게 자던가, 그 마저도 질릴 때는 설렁설렁 용악산을 올랐다.

동네 사람들 말대로 터가 안 좋긴 한지 오를 때마다 서늘한 한기가 느껴진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도 불길하고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떠도는 소문쯤이야 무시하면 그만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등 뒤에 가시라도 돋친 듯 자꾸만 등골이 쭈뼛쭈뼛하는 게 날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운이라는 건 혼자 오지 않는 법이었다. 과연 운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늘 큰 함정을 함께 품고 다가온다.

영 내키지 않아 대충 훑어만 보고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평소에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송이버섯이 그렇게도 눈에 잘 띄는 거였다. 어림잡아도 대략 70만 원은 될 것 같았다. 그쯤이면 벌써 만족하고도 남을 양이었지만 저쯤에 왠지 송이가 있을 것 같다 싶으면 정말 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면 또 있으니 적당히 멈출 수가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지만 누군가 억관을 유혹하기 위해 거대한 덫에 먹이를 놓아두고는 유인하는 것 같았다. 밥알을 쫓는 생쥐처럼 정신이 팔려 등 뒤에 또 다른 그림자가 따라붙은 것도 모르고 억관은 그렇게 정신없이 산을 올랐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거뭇거뭇하게 썩은 문 위로 희미하게 절을 뜻하는 한자가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말하던 정상 근처의 암자인 것 같았다. 일본 승려가 살던 곳이라고도 하고, 무당들이 귀신을 부르던 곳이라고도 하던. 여기까지 왔다는 건 용악산 내에서도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금지된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뜻이었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듣던 대로 신호가 터지지 않았다. 귀신에 홀리기라도 했던 걸까. 본능은 당장 내려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억관의 몸은 암자로 향하고 있었다. 사냥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이 구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는 것 같았다. 동네 겁쟁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겉은 이렇게 낡았어도 안에는 제법 돈이 될만한 것들이 남아있을 터였다. 송이를 한 아름 안고도 만족할 수 없던 억관이 암자의 나무 문을 열고 발을 막 들일 때였다.

동시에 들리는 미세한 낯선 소음. 나무 문의 삐그덕 대는 소음은 분명 아니었다. 산에 발을 들인 이후부터 계속 위험을 경고하던 본능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긴박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당장 뒤를 돌아봐야 한다, 불순물 같은 낯선 소리의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경고.


빠르게 돌아선 억관은 깊고 검은 구멍과 마주했다. 차갑고도 어두운 엽총 총구. 그리고 양손으로 엽총을 든 채 억관을 조준하고 있는 멧돼지 가면.

생각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억관은 멧돼지 가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엽총을 사이에 두고 빼앗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이 시작됐다. 억관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멧돼지 가면은 기세 좋게 사람의 뒤에서 총을 들이댄 것치고는 힘이 그리 강하지 못했고, 당황해 엽총을 뺏기지 않으려 버둥거릴 뿐이었다. 한참, 어쩌면 잠깐이지만 길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시간 동안 실랑이가 오고 가다 억관의 발이 암자 문지방에 걸리고 말았다. 억관과 멧돼지 가면 둘 다 암자 마당으로 쓰러지며 충격을 받았지만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주저 없이 다시 일어서야 했다.

멧돼지 가면의 손이 엽총으로 향하는 걸 보고 냅다 발로 엽총을 차버리자 이번에는 놈이 옆구리 쪽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멧돼지 가면은 억관을 죽일 생각인 것 같았다. 산을 오를 때부터 느꼈던 시선도 놈이 분명했다. 엽총을 잡은 폼이나 사냥용 칼을 쥔 폼이 처음 해 본 솜씨는 아니었지만, 단단히 벼르고 표적을 쫓은 놈 치고는 실력이 좋지 못했다. 덩치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억관에 비해 왜소한 몸을 가진 상대는 이미 처음 기습에 실패한 순간부터 위축되어 있었다.

"내가 왕년에 칼 좀 쓴 건 또 어떻게 알고 그거까지 챙겨 왔냐. 덤벼, 개새끼야. 너 죽이고 이 산에 묻어버리면 어차피 아무도 못 찾을 거 같은데 까짓 거 죽여버리지, 뭐. 너도 그러려고 여기까지 나 쫓아온 거잖아. 맞지? 한 번 해보자."

억관도 주머니에 있던 칼을 꺼내 움켜쥐었다. 버섯이나 약초 따위를 자르기 위한 거라 멧돼지 가면이 든 것처럼 보기만 해도 오싹한 모양의 칼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하찮은 상대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둘 중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칼을 고쳐 들고 억관에게로 빠르게 다가오는 멧돼지 가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억관이 방어 태세를 취하는 순간, 놈이 돌연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엽총을 빠른 속도로 들고는 산 아래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황당한 상황에 잠시 멈칫했던 억관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뒤를 쫓았지만 이곳 지리에 익숙해 보이는 멧돼지 가면은 날쌘 동작으로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놈이 단순히 산에 오른 사람을 무작위로 습격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용악산이 인적이 없는 편이긴 했어도 당시는 연쇄살인이 벌어지기 전이었기에 지금처럼 출입을 금한 것도 아니었고, 전설이나 미신 따위를 믿지 않는 동네 사람들은 제법 드나들고는 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해치는 게 목적이었다면 덩치가 크고 싸움에 이골이 난 억관은 표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놈은 많고 많은 표적 중 하필 어려운 억관을 택한 거였다. 그러니 이건 처음부터 억관만을 노렸던 거다.

연고도 없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 즐기지도 않던 억관에게 이 정도의 억하심정을 품을 사람은 인평시에 한 명뿐이었다. 멧돼지 가면 아래 보였던 왜소한 몸도 억관이 아는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구멍가게 앞에서 시비가 붙었던 바로 그놈.

구멍가게에서부터 건너 건너 건너 아는 사람에서 옆집에 산다는 이웃까지 거쳐 억관이 놈의 집을 찾아낸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녹색으로 페인트칠 한 철문은 기껏 잠근 것이 수고스럽게도 발차기 한 번에 열려버렸다. 이곳을 찾는 내내 놈을 어떻게 다그쳐서 사실을 말하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이 마당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칼을 가는 놈이 보였다. 산에서 억관을 위협했던 특이한 모양의 손잡이를 가진 칼. 그건 흔히 볼 수 있는 사냥용 칼이 아니었다. 손잡이에 선명하게 새긴 포효하는 호랑이 문양은 누가 봐도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물건이었다.

예상치 못한 불청객을 본 놈의 눈이 커짐과 동시에 억관의 무지막지한 발길질이 시작됐다. 그런 짓을 벌이고도 억관이 자신을 찾을 거라는 예상을 못했는지 놈은 쏟아지는 구타 속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억관은 누군가를 때릴 때 사정없었지만 그렇다고 나름의 정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어디쯤 병신을 만드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도 적어도 사람을 죽일 생각 작정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놈을 때릴 때는 달랐다. 암자 앞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억관은 그 음침한 산속에 묻힌 채 세상에 잊혔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처음 발길질을 한 순간부터 놈은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사람에게 총을 들이대던 패기는 전부 사라졌고 두 손을 모아 비는 비굴함만이 남아있었다. 고작 이런 새끼 때문에! 그 모습이 오히려 억관의 화를 돋운다는 걸 놈은 모르는 것 같았다. 멈출 생각은 전혀 없었다. 빨간 벽돌을 쌓아 지은 놈의 집 현관문이 열리고 어린아이 두 명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키나 덩치가 비슷한 걸로 보아 쌍둥이 혹은 연년생인 것 같았다. 놈의 집이니 놈의 아이들이었을 테고. 아무리 되는 데로 살아온 인생이라지만 적어도 자식 앞에서 부모를 해치는 짓은 꺼려할 정도의 인간성 정도는 가지고 있던 억관이었다.

"재수 없는 새끼, 앞으로 내 눈에 띄면 진짜 뒤질 줄 알아. 그냥 하는 말 아니고 진짜 뒤진다."

아이들의 겁먹은 모습을 뒤로한 채 집을 떠난 게 억관이 놈을 본 마지막이었다. 어차피 도로 공사가 끝나가는 마당이었기에 한 달 뒤면 인평시를 떠날 예정이었지만 그 후로 어째서인지 용악산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게 되었다. 멧돼지 가면이 두려웠던 건 아니었다. 그 산을 다시 찾는다면 이번에는 더 큰 끔찍한 일을 겪게 될 거라는 본능이 보내는 위험신호 때문이었다. 신기하게도 용악산에서 멧돼지 가면을 만난 후로 억관은 본능을 믿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인평시에서 사람이 제법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기도 했지만 억관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한 이후부터는 왠지 인평시에 대해 떠올리는 게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뒤 가는 곳마다 tv에서 야수가 잡혔다는 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결국 인평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멧돼지 가면과 엽총이라니. 그놈이 확실했다!



"그렇게 어설펐던 놈이 사람을 스물두 명이나 죽였다니 처음엔 웃겼지. 그런데 갑자기 소름이 돋더라고. 뭐든 처음은 어렵거든. 실수도 하고 많이 하고. 다음부터 조금씩 익숙해지는 거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내가 그 새끼 첫 번째 사냥감이었단 거잖아."

지승은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억관은 왜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지.

"뭐 하러? 어차피 잡혔잖아. 괜히 자식들 앞에서 그 새끼 때린 거 들춰봤자 나도 좋을 거 없고."

"뉴스에 나온 야수 얼굴을 확인도 안 했어요? 현명우 씨는 그런 집에 산 적도 없고 쌍둥이 아이가 있지도 않았어요. 잡힌 야수를 봤을 때 이상한 걸 못 느낀 겁니까?"

"말했잖아. 그때 일은 떠올리기가 싫었다고. 잡혔다니까 그런 줄 알았지. 그 얼굴까지 보고 싶었겠어?"


뉴스로 야수의 범죄를 확인한 억관은 오히려 멧돼지 가면과 더 깊게 얽히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며 떠들고 다니던 억관이었지만 그런 미친놈의 관심을 받는 건 사양이었으니까. 그 후 뜨내기 생활을 이어가다 몇 번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청수교도소까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야수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문득 궁금해졌다. 놈이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정말 내가 놈의 첫 번째 사냥감이었을까? 자신이 놓친 사냥감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런데 억관이 마주한 야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멧돼지 가면을 쓰고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이 그럼 또 있었다는 말인가. 그놈은 그저 억관에게 복수를 할 생각뿐 그날 호되게 당하고 그런 불순하고 어두운 마음들을 접은 건가. 당시 억관이 느꼈던 살기는 고작 그 정도였던 거였나.

허탈한 기분을 느꼈던 억관은 괜히 지난날 용악산에서 겪었던 일을 살짝 더 부풀려 사형수 앞에서 허세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처음에는 관심 없어 보이던 사형수의 표정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굳어갔다.

"프랑스에서 용병을 뛸 때 팀 로고가 호랑이였어. 그만두고 나올 때 기념이라면서 칼 손잡이에 그 로고를 세겨주더라고. 대단한 의미를 둔 건 아니어서 친구 녀석이 하도 부러워하길래 선물로 줘버렸지."

억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명우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날 이후 명우는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진짜 야수를 알고 있다며.



"그 친구 이름은요? 누군데요?"

어떻게 지승을 대하는 태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걸까? 취재를 하겠다는 해인의 말에 숨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야수를 만났다는 제보자가 있다는 말에 억관의 이야기를 털어놓긴 했지만, 지승은 앞으로 자신이 하려는 일들에 해인이 끼어들 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과연 옳은 건지 의문이었다.

"이억관 씨 얘기가 사실이라면 그 사람에 대해 확인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누군지 아는 사람이에요?"

다그치는 해인을 물끄러미 보던 지승의 입에서 체념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눈앞의 상대는 유강우 형사의 딸이다. 기자이기도 했다. 적인지 아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야수의 일을 파헤치는 데 열심일 건 분명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리고 다른 야수가 있을 가능성에 대해 들은 이상 더는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유기자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해인도 아는 사람이라니,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지승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을 찾았을 때 명우가 억관에게 그 사람에 대해 들어보라며 이름을 말했을 때도 지승은 명우가 그 사람을 야수라 생각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김철기."

멧돼지 가면의 이름을 말했는데도 해인은 이해가 안 되는 눈치였다.

"김철기라면 또 다른 실종자잖아요. 두 명의 실종자 중 저희 아빠를 제외한 다른 한 명."

"맞아요. 그 김철기가 이억관 씨를 죽이려 했던 멧돼지 가면입니다."


-계속-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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