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by 다시만나

한때 나는 끊임없이 “내가 쓸모있는 사람인가?”를 고민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고, 봉사활동이나 정기 기부를 통해 내 쓸모를 확인할 때면 뿌듯함이 찾아왔다. 일찍 취업에도 성공했을 때는, 내 역량이 사회에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런데 퇴사를 하자, 세상에 쓸모없어진 사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내 일은 모두 다른 이들의 몫이 되었고, 나는 갑자기 무용해진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쓸모’에 집착했을까?

흔히 말하는 ‘스펙(specification)’이라는 말은 기계나 사물의 성능을 표시하는 객관적 지표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사람의 가치까지 재단하는 척도가 되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지 못하면 곧장 ‘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관해 함께 말할 수 있네.
세상이 넓고도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땅이네.
그렇다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고들어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그 밟고 있는 땅이 사람에게 쓸모가 있겠는가?”

혜시가 “쓸모가 없지”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음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네.”

『외물(外物)』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의 힘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트웨이츠의 ‘토스터 프로젝트’는 ‘쓸모없어 보이는 시도’가 어떤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시장에서 필요한 재료를 바로 사오는 대신, 토스터에 들어갈 전선을 만들기 위해 구리 광산까지 직접 찾아갔고, 욕조를 부숴 플라스틱 원료를 추출했다. 총 9개월에 걸쳐 3,000km를 이동하고 2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써서 완성한 토스터는 고작 한 번만 작동하고 곧장 망가져 버렸다. "진짜 대체 무슨 쓸모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토머스 트웨이츠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매일 쓰는 제품들이 어떤 방대한 생산·소비의 고리를 통해 만들어지는지, 그로 인해 환경이 얼마나 파괴되고 있는지 몸소 체감했다. 이처럼 맥락만 보면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쓸모없지’ 않았다.


루브 골드버그 장치나 시몬 예츠가 만든 ‘엉망 로봇’들 역시 ‘쓸모없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매력적인지 보여준다. 목적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그걸 해내는 방식은 터무니없이 복잡하거나 심지어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기계적 원리와 기술에 대한 배움이 일어나고, 실패하더라도 “왜 실패했지?”라고 분석하며 더 나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코딩 교육에서의 ‘쓸모없음’

코딩은 흔히 “효율적이며 실용적인 작업”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아이들이 배우는 과정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완성해야 성공”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어설픈 프로그래밍, 삐걱거리는 로봇, 화면에 오류 메시지가 뜨는 엉뚱한 게임을 만들 때야말로 아이들은 “왜 이렇게 됐지?”라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 궁금증이 원리를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동기가 되어, 결과적으로 더 큰 학습 효과와 창의력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곤 한다. ‘쓸모없음’ 속에 담긴 즐거움과 자유, 무수한 시행착오를 허락하는 교육,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배우고 탐구하는 힘을 길러주지 않을까? 실제로 창의성이 가장 폭발하는 순간은 목적지에만 집착하기보다 과정을 흥미롭게 바꿔보는 데서 나오기도 한다.


쓸모를 넘어

그때의 나에게 진짜 필요했던 건 내면을 돌아볼 ‘틈’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시간 속에서 오히려 힘이 회복되고, 엉뚱해 보이는 취미나 작업들을 통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남들에게는 쓸모없다고 보이는 그 여백이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코딩 교육이든 어떤 배움이든, 스스로 질문할 시간과 실패를 허용해주는 환경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쓸모’를 찾게 된다. 그러니 이제, “나는 쓸모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 ‘쓸모없어 보이는 시도’가 어떤 재미와 배움을 줄 수 있을까?”를 물어보자. 그 대답을 찾기 시작하는 순간, 낯선 길 위에서도 우리는 의외의 즐거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날 무렵, 처음에는 쓸모없어 보였던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한 단계 성장시킨 소중한 동력이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