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가 어딨어?

by 다시만나

요즘은 누군가의 실수 하나, 말 한마디로 너무 쉽게 도마 위에 오르는 세상입니다. 특히 아이들의 행동 하나에 “요즘 애들 왜 저래?”, “부모가 뭘 가르친 거야?”라는 말이 너무 쉽게 오갑니다.

물론 잘못은 가르쳐야 하죠. 하지만 아이는 지금, 과정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 모습 하나로 성격을 단정하고, 가능성을 덮어버리는 시선은 너무 빠른 판단 아닐까요?


"사람은 변해."

남편이 자주 하는 말입니다.

처음 들었을 땐 참 낯설었습니다. 세상은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하니까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 기대하면 실망한다고 배워왔으니까요. 그래서 누구에게 기대하지도, 크게 실망하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그렇게 단정짓는 편이 마음이 덜 다치니까요.

그런데 남편은 달랐습니다. 똑같이 누군가를 너무 믿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실망하지도 않았지만 냉소적인 시선이 아닌 따뜻함이 느껴졌거든요. 그 이유는 사람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살아보니, 사람은 정말 변하더군요.

연애할 때의 남편은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어요. '이 사람이 날 좋아하는 게 맞나?' 싶었던 그가 결혼 날짜를 잡고 나서부터는 술자리 중에도 "어디야?" 묻는 저의 전화 한 통에 마음이 불편하다며 귀가를 서두르곤 했죠.

신혼 시절에는 흔한 아버지들처럼 양말을 찾고, 옷을 삐딱하게 걸고, 현관 앞에 묶어둔 쓰레기 봉투는 기막히게 피해서 출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이, 출근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보다 먼저 일어나 밥을 짓고, 아이가 태어나자 정돈된 공간에서 아이가 놀기를 바라는 마음에 매일매일 청소를 도맡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취방 하나도 버거워하던 사람이 이제는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내가 하던 잔소리를 나에게 하고 있습니다. "쓴 건 제자리에 좀 놓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 그럴 때면 저는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오빠, 원래 안 그랬잖아."

그러면 남편은 말합니다.

"원래가 어딨어."


원래는 없습니다.

어쩌면 '원래'란 말은 변화 이전의 습관이거나, 스스로에게 쉴 틈을 주기 위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정해진 틀이 아닌,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경험과 상황에 따라 변화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는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원래가 없다'는 말에는 한 사람을 고정된 상태로 단정짓지 않겠다는 다짐이 숨어 있습니다. 기대 없이 사랑하고, 실망 없이 응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 사람을 변하도록 돕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건 남편 이야기였지만 사실 아이들에게서 더 자주 봅니다.

처음엔 서툴고, 가르쳐준 것도 자꾸 잊고, 정답이 아닌 다양한 답을 찾는 것을 힘겨워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해볼래요."


원래라는 말에는 한 사람을 고정시키는 무심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너무 익숙해지면, 누군가의 가능성을 끝까지 지켜볼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사람은 미완성으로 존재하고, 미완성을 자라게 해주는 건 냉정한 시선이 아닌, 조용히 건네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들이 다 그렇지"라는 옛날 어른들의 말은, 무책임한 방임이 아니라 과정을 존중하는 애정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당신도

나도

오늘도 어디선가 자신만의 답을 찾고 있겠지요.


조금 더 기다려주는 세상

조금 더 웃어주는 어른이 많은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