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나는 소통방식이 필요하다
산업화 이래 우리의 교육은 획일화의 길을 걸어왔다. 국민의 교육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리겠다는 미명하에 비슷비슷한 표준화된 인재들을 길러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세상에 똑같은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전자가 거의 일치하는 쌍둥이라도 이들을 동일한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저마다 각자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다. 우리가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각자의 개성을 무시한 획일화된 교육방식의 한계는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교육이 개별화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정책적인 변화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변화일 것이다. 아이 각자의 특징을 무시한 일관된 방식의 소통은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다.
학년말이나 축제 등 특별한 날 영화보기 행사를 할 때 흔히 보는 장면이 있다. 함께 영화를 보다 보면 학생들 사이에서 “저 장면 생각난다. 저기서...”하면 어떤 학생은 “너 저 영화 봤어? 저기서 어떻게 되는데 빨리 말해줘라. 궁금해 죽겠다.” “결말은? 결말은 어떻게 돼?” 하며 결말을 알려달라고 부추기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어우~ 야아~! 말하지 말라니까.”하며 말리는 학생들도 있다. 또 주변에서 아무리 난리굿을 해도 모른 채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즉 결말이 먼저 궁금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결말보다는 영화 스토리를 빠짐없이 차근차근 알아야 재미가 있는 학생들도 있고, 그냥 영화 속 인물과 영화 자체에 빠져 감상을 즐기는 학생들도 있다.
현장체험학습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다. 현장체험학습에서 누가 같은 모둠인지 모둠 친구가 주요한 관심사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버스 옆자리에 앉는 친구, 점심 같이 먹을 친구가 가장 큰 관심사인 학생도 있다. 또 처음에 뭘 보고 두 번째로 뭘 보고 등 스케줄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있다. 그러면서 “전 여행 체질인가 봐요.” “저는 체질이 달라요.” 하기도 하고, “우리는 체질적으로 너무 잘 맞아요.”하고 좋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흔히 일상생활에서 “난 이 일 체질이 아닌가봐”하기도 하고 “그 사람 성격 어때?”라고 묻기도 한다.
이렇듯 하나의 상황에 대해서도 아이들마다 여러 가지 반응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점을 무시한 채 교사가 일정한 표준 방식을 정해놓고 소통하려 한다면 어쩌면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과거 공부 잘하거나 뛰어난 재능이 있는 아이만 예뻐하는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은 차별대우를 한다며 불평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러한 불평이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뛰어난 몇몇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을 고려하지 않은 교사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이제 교사의 말은 또 다른 의미의 차별, 즉 차이가 있는 소통방식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만 기울어진 불평등한 차별이 아니라 아이들 각각의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의미의 차이나는 소통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