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미처 보지 못한 것까지 보는 영화 오독하기
우리가 영화를 지식이 아닌 예술로 대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개중에는 영화적 사건을 사실로 오인하기도 한다. 특히 영화가 사실에 근거했다고 말할 때는 더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에 근거했던 아니든 상관없이 영화가 허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대중들은 영화적 서사의 개연성이 부족하면 “영화니까 그렇지 뭐”라고 말하거나 “영화를 너무 성의 없게 만들었어”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비전문성이 영화가 사실이나 예술이냐를 혼동하는 오류로부터 지켜준다고 말할 수 있다. 대중적 관객들은 영화를 일시적인 그리 중요하지 않은 오락물로 생각한다.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하는 예술 작품이라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뭘 배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긴장을 풀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당연히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견해가 바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비평가나 소위 마니아들에게는 이들과는 좀 다른 뭔가가 있다. 그들은 영화가 ’삶‘에 대한 견해나 의미, 또는 철학이라 불리는 것을 전달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영화가 모두 교훈적인 것은 아니다. 좋은 영화는 노골적으로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가 가지는 미덕은 암시적인데 있다.
좋은 영화일수록 진리나 철학, 또는 세계관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그것은 순서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결과물이다. 영화의 사건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연대기적이고 인과적인 순서가 있다. 모든 장면이나 구분은 영화구성 원리에 따라 마치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처럼 배치된다. 그것이 영화 스타일이다.
영화감상은 스타일을 따라가며 느끼고 상상하는 것이다. 어두운 것과 밝은 것, 빠른 것과 느린 것, 소박한 것과 세련된 것 사이의 대조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너무 완벽하게 대칭적이어서도 곤란하다. 어느 영화든 나름의 질서정연한 움직임을 따라갈 때 우리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작품을 철학적, 윤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별로 지혜로운 감상법이 아니다. 그것은 작품을 있는 그대로 새롭게 몰입해서 보기보다는 이 영화가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증거들만을 찾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뭔가 증거를 찾는데 바쁜 나머지 그것이 우리에게 뭔가를 주는 기회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작품 안에서 점점 더 자기 자신만 만나게 된다. 그러나 예술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게 하고, 우리를 고독한 나르시시즘의 연못에서 구해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폭넓고 더 깊은 세상에 대한 사유다. 내가 영화를 보라고 권할 때는 견해를 바꾸라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견해 속으로 즉 그들의 태도와 감정과 총체적 경험으로 온전히 들어가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켄 로치나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도 좋아한다. 진정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견해라도 설득력 있고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좋은 평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믿음체계“는 이러한 정직한 관람 태도를 방해한다. 자신의 믿음에 맞지 않거나 자신이 설정한 형식적 틀에 맞지 않는 영화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사실 어쭙잖은 ’인생 철학’을 담은 영화보다 잘 만든 오락물이 더 낫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요즘 한국영화에 대해 내가 안타까워하는 점도 이것이다. 작가주의라는 미명하에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대부분 속물주의에 빠진 영화들만 쏟아내고 있다. 아무리 한국영화를 사랑한다 해도 이런 속물적인 것까지 봐 줄 수는 없다. 할리우드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오락영화지만 잘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마다 감독의 철학과 지혜가 녹아 있는 법이다. 나의 영화 보기 원칙은 삐딱하게 보기다.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생각하지 않고 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오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독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는가는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