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라는 한 국가에 살고 있다.

by 화니샘

같은 영화에 대해 두 번 리뷰를 쓰는 것은 나에게도 무척 드문 일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런 영화는 다시 나오기 어려운 그야말로 '걸작'이기 때문이다.
기우의 마지막 대사 “저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풀어보려고 해요.”라는 대사처럼 이 영화는 보통의 해석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해석이 필요한 듯하다. 여기에는 우리 속에 감춰진 욕망에 대한 성찰이 수반되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정직할 수 없다. 언제나 자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거짓말을 한다. 인간의 이기주의는 계급과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기택의 가족이 거짓말로 박사장의 집에 집단으로 취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 뻔뻔함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박사장네 가족도 사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 우아한 척 하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이들도 부모의 기대에 맞춰 거짓된 행동을 한다. 박사장 자신은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했을지 짐작이 들 정도로 위선이 몸에 밴 사람이다.

더욱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냄새를 혐오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냄새가 없는 양 행동하는 것이다. 박사장 부인인 은교는 운전기사인 기태의 냄새를 의식한 듯 차창을 열면서 자신은 맨발을 앞 좌석 위에 올려놓고도 아주 태연하다. 자신의 악행에 대해 합리화하는 모습은 너나 할 것 없이 똑같다는 것을 봉준호 감독은 냉소적으로 꼬집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계급 문제와 신분 상승을 둘러싼 갈등이다. 그래서 누가 기생충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한 화두처럼 등장한다. 어찌 보면 가난한 자들끼리 기생하는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충(虫)을 보지 말고 기(寄)에 주목해서 보라고 한 것처럼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것에 있다. 바로 자본주의다. 즉 돈을 가진 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이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나도 착하게 살 수 있어, 돈이 주름을 싹 다 펴준다.”는 기태의 아내 충숙의 말대로 부자들이 겉으로 구김살 없어 보이는 건 돈의 힘이지 원래 착해서가 아니다. 돈은 사람을 갈라놓는다. 그리고 넘나 들 수 없는 경계를 만든다. 박사장이 즐겨 쓰는 말 중에 ‘선을 넘는 게 싫다’는 말은 그 경계가 일방적임을 의미한다. 가난한 자가 그 선을 넘을 때는 비극이 초래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그 선을 다르게 해석한다. 그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는 선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예의에 관한 선에 주목하라고 우리에게 외친다. 기태가 아무 잘못도 없어 보이는 박사장을 찌른 것은 그가 부자여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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