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C 대표적 영화로 남을 <토니 에드만>

결코 유머를 잃지 마세요

by 화니샘

아버지와 딸, 세대 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토니 에드만>과 같은 깊이를 가진 영화는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코믹 드라마 형식을 띠고 있지만 한 번 봐서는 제대로 알 수 없을뿐더러, 두 번 볼 때부터는 웃을 수가 없다. 독일식 유머와 여러 가지 은유가 넘쳐난다. 그래서인지 영화평을 보면 매우 다양한 해석이 공존한다. 아버지와 딸의 애증관계로 해석하기도 하고 독일식 변증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교사로, 더 정확하게는 음악교사로 은퇴한 아빠(그래서인지 직업적 냄새가 곳곳에 배어있다 )는 바쁘게 살고 있는 딸이 걱정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토니 에드만)인 양 변장을 하고 불쑥 직장으로 찾아가 그녀의 삶에 끼어든다. 딸은 이런 아빠가 못마땅하지만 애써 예의로 대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사사건건 서로 엇박자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아빠의 충고처럼 자신의 삶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그러면서 아빠와 다시 헤어지기 전에 감동적인 찰나적 화해를 하게 된다.


어찌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딸 바보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게 단순하지만 않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딸의 단면을 통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비인간적 사회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지를 묻는, 그야말로 21세기 철학적 사유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현대 사회는 불안으로 대표되는 피로사회다. 딱히 지배하는 자가 누군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군지도 명확하지 않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억압하며 소모한다. 경쟁이 일상이 되고 멈춰 있는 것은 뒤처지는 것처럼 느낀다. 초초하고 불안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하며 열정과 돈을 낭비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서 볼 점은 유럽의 진보 아이콘이었던 68세대인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이다. (나치 시대를 살았던 그의 어머니와 신세대 딸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를 살아가는 딸의 삶은 아버지에게는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이 매우 유머러스하게 표현되는데 그것은 68세대가 가졌던 자유와 낭만으로 대표되는 시대정신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세대 간에는 언어도 다르게 사용된다. 예를 들면 퍼포먼스는 아버지에겐 재미난 볼거리지만 딸과 그의 비서는 과업일 따름이다. (미팅이 우리에겐 대학시절 추억이지만 요즘 미팅은 업무 회의에 불과한 것처럼...)

이런 세대 간의 갈등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품 속 딸이 성장해서 떠나고... 각자의 삶을 살면서 점점 멀어지지만 못내 아쉬운 애틋한 부정을 숨기지 못하고.... 기어이 딸의 삶에 끼어들고.... 그것을 못 내 부담스러워하는 딸과의 갈등... 그렇지만 결국 아버지가 전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훈훈함 속에 숨겨져 있는 시대 고발...


켄 로치나 다르덴 형제와 일맥상통하지만 코믹 장르에 시대정신을 입히는 이런 재능은 당분간 그 누구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들 것 같다. 진부함 속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예술의 미덕이라면 이 영화야 말로 그런 자격을 넘치게 갖고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