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한편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다즐링 주식회사>도 예외는 아니지만 색다른 점은 색채의 나라 ‘인도’ 자체가 주는 색감이다. 웨스앤더슨의 인도영화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이 작품은 따로 세트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활기 넘치는 인도의 화려한 색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사실 웨스 앤더슨 영화를 영상미 하나로 평가하는 건 너무 단편적인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그건 마치 봉준호 감독을 디테일이 강하다라고 평가하는 것과 같다.(그들은 영화적 천재이고, 나는 그들의 모든 면을 사랑한다.)
이 영화를 코메디로 분류하곤 하는데 그냥 코미디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냥 웨스앤더슨 영화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그 역시 봉준호처럼 장르를 창조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대중성에서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마니아들은 많지만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위해서는 약간의 정성이 필요하다.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인스턴트 커피보다는 드립 커피 같은 그런 영화다.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라 이미 스포가 공개되어 있어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아버지 장례식 후 1년동안 얼굴도 보지 않던 삼형제가 히말라야 근처 수도원에서 수행중인 엄마를 찾아 인도로 모인다. 거기서 다즐링 주식회사라는 기차를 타고 '영혼의 여행'를 함께 하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주 내용이다.
형제애를 앞세워 모이긴 했지만 닮은 데라고는 하나도 없고 성격과 취향 모두 제각각이다. 사사건건 부딪히고 서로에 대해서는 완전 시니컬하다. 이 기차 여행을 끝까지 할 마음도 사실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었으니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엄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유물인 루이비통 여행 가방을 똑 같이 가지고 다니고, 아버지 유물에 매우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가 중반에 이르면 우리는 이 삼형제가 왜 모였고, 무엇을 찾으려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삼형제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마는 종교적 삶에서 자신의 길을 찾느라 인도로 구도의 길로 떠났고, 아버지는 유산은 많이 남긴 것으로 보아 사업에 몰두하느라 역시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든 사랑받지 못하면 영혼의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상실감을 이기지 못한 이들은 인도에서 수행 중인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함께 떠난다. 그러나 사실 그 어머니의 사랑마저 확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엄마를 찾자 마자 물은 첫마디가 자신들을 사랑하느냐였다. 물론 엄마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럼 왜 자신들을 버렸냐고 되묻지만 엄마는 이곳의 아이들이 자신을 더 필요로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말보다 더 확실한 것을 보여주겠다며 알듯말듯한 눈빛 교환을 하고 다음날 아침 사라져 버린다. 엄마의 사랑은 더 큰 사랑에 가 있었던 것이다.
여행 끝에 이들은 떠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자신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루이비통 여행 가방을 던져버리고 빈 몸으로 기차에 오른다. 출발한 열차를 쫒아가 타는 과정을 매우 천천히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매우 코믹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함축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상실’과 ‘버림’이다. 상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극복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이 '버림'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구하는 마지막 과정은 모든 고통과 욕망을 던져 버리고 홀로 서는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자유롭게 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에 삼형제가 바이크를 타고 가는 장면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웨스앤더슨에게 있어서 바이크를 타는 장면은 자유인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영혼을 찾는 여행은 성공한 듯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모를 훈훈함이 느껴지고, 갑자기 인도로 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