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믿음’은 정당한가

by 화니샘

우리의 믿음은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다른 믿음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것이 과학적이든 종교적이든, 아니면 단순한 믿음... 예를 들어 어느 정치인의 부정에 대한 믿음이든, 모든 믿음의 구조는 특정한 믿음과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다른 믿음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정치인의 부정을 의심케 하는 증거와 자료, 소문과 흔적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 의심을 강화할 것이며, 이 근거들에 의해 지탱된 우리의 믿음은 웬만해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교적 믿음을 갖는 사람은 자신의 종교적 체험과 기존의 지식, 가치관 등이 그 종교적 신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능함으로써 독실한 신자가 되었을 것이다.

과학적 믿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이유로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변화는 단순히 천체운동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뀌는 정도의 믿음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믿음체계 전체의 붕괴와 새로운 믿음체계의 탄생, 즉 구질서의 퇴장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의미했다.

나 역시 자신이 경험하고 습득한 정보의 파편들을 기반으로 믿음의 체계를 구축한 인간의 전형이다. 자신이 본 것을 옳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을 뿐인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토마스 앤더슨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생각이라는 매트릭스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만의 매트릭스에 갇혀 있지만,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이에 대해 지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을 스스로 옥수수라고 믿는 남자가 있었다. 오랜 치료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겨우 납득한 이 환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귀가 조치되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혼비백산 병원으로 되돌아 왔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의사가 묻자, 그는 닭들이 나를 자꾸 쫓아다닙니다. 무서워 죽겠습니다. 환자는 몸을 떨며 아직도 닭이 자신을 쫓아 오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안심시켰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아시잖아요. 환자는 말했다. 그야 저는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실제 우리가 현실에서 펼쳐지는 일들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을 옥수수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만 눈을 돌리고 있을 뿐 외부에 엄존하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애처로운 모습, 그것이 환상에 빠진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옥수수가 된 자의 두려움은 바로 탈출이 불가능해 보이는 갇힌 회로의 매트릭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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