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이 말한 ‘길을 잃는 훈련’이라는 공부법에 따라 오늘도 새로운 공부에 도전해 본다. 나에게 공부란 불친절하고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양식이다. 한편으론 언제 올지 모를 새로운 세상을 문틈으로나마 엿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마도 공부를 멈추는 순간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기력이 다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세상의 문이 열렸을 때이거나...
지도 없이 여행하기는 처음은 헤매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곧 일정한 법칙하에 탐색을 시작하게 한다. 한곳에서 출발해서 여러 곳으로, 여러 곳에서 다시 한 곳으로 출발해 오는 연습을 통해 그 도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히 길을 찾기 위해 만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억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는 여행자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도시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이해한다.
이곳 남산에 온 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늘 지도 없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돌아 다녀서인지 신기한 것들이 너무 많다. 월요일이면 들르는 조그만 빵집이 있다. 이곳 사람들이 빵이 맛있다며 어디서 샀느냐고 하길래 상호를 말해 주었더니 아는 사람이 없다. 마리스라는 이름의 샌드위치 가게 이름이 그 주인의 프랑스 이름이라는 것도 내가 알려주고 나서야 그렇구나 한다.
안내 책자에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특징 없고 시시한 것들 속에 진짜 그 도시 사람들의 삶이 있다. 오래 산 사람들은 그 도시를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그들은 진짜 속살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거기 서 있는 가로등처럼 무엇이 있는지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그 도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로등이나 고양이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은 자신이 탐구하는 대상이 누구 혹은 무엇이든간에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지식 속으로 데려오는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
내가 그 대상 속으로 이동하고 스며드는 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다른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되기’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고정된 주체의 자리를 지우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권력과 위계에 저항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