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차: 유럽을 닮은 언덕 위에서 쉬어가기
오늘은 숙소를 ‘Mook Coffee Home’으로 옮기는 날이다. 오전 10시, 정들었던 이전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그랩에 몸을 실었다. 새로 도착한 숙소는 공항으로 이어지는 길목, 어느 호젓한 언덕 위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짐을 먼저 맡기고 1층 카페에 앉았다. 밀크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 풍경을 즐겼다. 탁 트인 언덕 너머로 펼쳐진 전경은 마치 유럽의 어느 평화로운 마을을 옮겨놓은 듯했다. 이 전망 하나만으로 ‘무크’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오후 1시 체크인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민속박물관에 들렀지만 아쉽게도 휴관이라 발길을 돌려 ‘바오다이 왕비의 여름 별장’을 둘러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저택이지만, 달랏의 푸른 하늘 아래 서 있는 모습은 고즈넉한 운치를 뽐냈다. 화려함은 사라졌어도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더 진하게 와닿았다.
점심은 솥밥으로 유명하다는 ‘Quan com Linh’을 찾아갔다. 솥밥 특유의 구수한 향이 식욕을 돋운다. 야채볶음은 아삭함이 살아있고, 돼지갈비는 짭조름한 양념에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여기에 달걀 파전과 사이공 라거로 입가심을 하니 ‘잘 먹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1인당 7,000원 정도에 최고의 정찬이었다.
내일을 위해 오후 일정은 비워놓고 휴식을 취했다.
9일 차: 로빈힐의 바람과 진흙 마을의 추억
아침은 가볍게 누룽지로 속을 달래고 예약해 둔 바이크에 올랐다. 하루 대여료 6,000원(120k)이라는 착한 가격에 기분이 좋아진다. 가까운 주유소에 들러 2만 동(약 1,000원) 어치 기름을 채웠다. 이 정도면 오늘 다니기에는 충분할 터였다.(지난번 5만 동어치 풀로 채웠다가 반도 못 쓴 경험에서 얻은 짠물데이터 덕이다.)
15분을 달려 도착한 로빈힐케이블카 역. 주차비 3,000동을 내고 바이크를 세운 뒤 왕복 티켓(12만 동)을 끊었다. 15분간 공중을 가로지르는 동안, 발밑으로 펼쳐지는 소나무 숲과 달랏 시내의 전경을 즐기며, 행여 놓칠세라 이 풍경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케이블카의 종착지는 죽림선원(Truc Lam Zen Monastery)이다. '꽃과 나무의 사원'이라는 명성답게 정성껏 가꾼 분재와 꽃들이 경내를 수놓고 있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준 천연 에어컨 바람 덕분에 걷는 내내 상쾌함이 가시질 않았다.
나오는 길, 기념품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주인장이 부른 가격은 60만 동. 슬슬 흥정의 기술을 발휘해 볼 타이밍이다. 마침 우리가 이것저것 구경을 시작하니 한산하던 가게에 손님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은근슬쩍 주인장에게 눈짓을 보내며 50만 동을 제시했다. ‘우리 덕분에 손님이 많아졌는데, 기분 좋게 깎아주는 게 어때요?’ 주인장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계산기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숫자를 누르다 결국 55만 동에서 합의를 봤다. 주인장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돈을 챙긴다. 5만 동 차이지만, 이런 게 바로 흥정의 맛이 아닌가?
다음 코스는 진흙 마을(Clay Tunnel). 호수를 끼고도는 굽잇길과 비포장도로를 조심스레 달려 도착했다. 달랏의 명소와 역사를 진흙으로 재현한 이곳은 그야말로 거대한 야외 전시장 같았다. 입장료(12만 동)는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쾌청한 날씨 덕에 찍은 사진들이 화보처럼 나왔다. 8만 동을 내고 인화한 사진 한 장이 이번 여행의 소소한 전리품이 되었다.
기분 좋게 돌아오던 길, 허기를 못 이겨 들른 길 가 식당이 화근이었다. 맛도 평범했던 볶음밥과 소고기 덮밥이 결국 배탈을 부르고 말았다. 여행지에서의 위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숙소에서 한숨 돌린 뒤, 저녁은 주인장이 추천한 근처의 BBQ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비슷한 식당이 골목 사이로 많았는데 이곳이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화로 위에서 구워 먹는 모둠 고기 콤보 때문이다. 가격은 350,000동 정도이고 2명이 먹기에 적당한 양이었다. 숯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를 타이거 맥주와 함께 즐겼다. 현지인들의 북적이는 활기 속에 섞여 시끌벅적하게 하루를 갈무리했다.
내일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구름 사냥'을 떠날 예정이다. 그리고 저녁엔 시원한 수제 맥주로 여행의 정점을 찍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