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

by 화니샘
“행동방식에 따라 믿음을 지니게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브루너의 말처럼 믿음은 순응을 강화시킨다. 믿음은 변화에 대한 저항을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타협적 믿음은 이런 특징을 더 크게 가진다. 신념을 품은 사람들은 강한 확신으로 자신의 믿음을 주장하며 이를 증명할 증거나 권위가 있다고 믿는다. 또한 자신의 믿음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믿음 및 증거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애써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를 제시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를 ‘믿음보존편향’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믿음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가진 이런 ‘깊은’ 믿음은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런 믿음을 바꾸는 연구 결과 40명 중에 2명만이 믿음을 바꿨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은 어떻게 생겨날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대체로 문화적 경험이나 자기 암시, 세뇌, 그리고 상상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선천적으로 믿음을 지니도록 태어났다. 인간의 뇌는 믿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항상 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는 간극을 줄이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믿음은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줄여준다. 다시 말해 뇌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주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 믿음이 번성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보의 홍수다. 수많은 정보에 의해 과부하가 생기면 뇌는 손쉬운 믿음의 방식에 의존한다.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의 믿음이 새롭게 생겨난다. 이제까지의 지배적인 믿음 시스템이 사라지고 믿음의 과잉이 생겨난다. 비현실적인 믿음과 상상이 넘쳐나는 이유다.


믿음은 자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믿음을 진리라고 오도해서는 곤란하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자신의 믿음을 의심해 보는 것이다. 의심한다는 것은 진실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어책이다. 의심할 수 있는 때까지 의심하고 명확한 설명과 확증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뉴스에 실린 사진을 보니 생각나는 말이 있다.


‘사진은 보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보이기 위한 것을 찍는 것이다.’

카메라 렌즈는 프레임에 우리를 가두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배제를 동반한다. 그렇다면 내 눈이 보지 못한 것에 또 다른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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