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행동을 능가하지 못한다.
때로는 직접 말로 하는 것보다는 침묵으로 전달하는 것이 상대를 설득하는데 더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침묵으로 가르치기>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말은 환경을 이루는 요소 가운데 가장 효과가 떨어진다. 예를 들어 ‘방안에 있어’라고 명령하느니 문을 잠가 버리는 게 낫다. ‘나가서 뛰어 놀아라’라고 백날 잔소리를 해봐야 직접 뒤뜰에 그네를 매달아 주는 것만 못하다. 때에 따라서는 백 번 잔소리하는 것보다 환경의 구조를 설계 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부모든 교사든 자라나는 청소년의 성격을 올바르게 길러주고 싶다면 주변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법이 최선이다.”
이처럼 말은 행동을 능가하지 못한다. 만일 여러분이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흔히 하는 대로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 많이 읽을수록 좋다”라고 말로 가르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다. 대신에 선생님이 먼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조금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들 가까이에 재미있는 책을 가져다 놓고 그 책을 읽어주거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사실 그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전에는 교사가 책을 읽기만 해도 학생들이 따라 읽었다. 예전이라고 하면 언제 적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지만 대략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교사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도 여간해서는 따라 읽지 않는다. 그렇지만 교실 환경을 바꾸면 달라진다. 교실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책을 가져다 놓고, 선생님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호기심이 생겨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 읽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그 때는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책 읽는 교실이 만들어진다.
이렇듯 아이들은 말하지 않는 것들로부터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 나 역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가르침은 경험에서 얻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가르치는 말보다는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믿음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가르침에 있어서는 환경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인데 이제부터는 가르침의 기본이 말이라는 생각은 바꿀 필요가 있다. 말로 가르치는 방법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가르침을 모색하게 된다. 사실 좋은 교사나 훌륭한 스승은 말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침묵으로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장자에 나오는 왕태도 그런 스승이었다.
노나라에 왕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형벌을 받아 발 하나가 잘린 사람이었다. 왕태를 따르는 사람의 수가 공자를 따르는 사람의 수와 맞먹을 만했다. 공자의 제자 상계(常季)가 공자에게 묻기를 ”왕태는 외발인데 따르는 자가 선생님의 제자와 노나라를 반씩 차지하고 있습니다. 서서 가르치는 일이 없고, 앉아서 토론하는 일도 없다는데, 사람들이 텅 빈 채로 찾아가서 가득 얻어 돌아온답니다. 정말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몸이 불구지만 마음은 온전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하길 “그는 성인이다. 나도 꾸물거리다가 아직 찾아뵙지 못했지만, 앞으로 스승으로 모시려고 하는데,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느냐? 어찌 노나라 사람들뿐이겠느냐? 나는 온 세상 사람을 이끌고 그분을 따르려 한다. 사람이 흐르는 물에 제 모습을 비춰 볼 수 없고, 고요한 물에서만 비춰 볼 수 있다. 고요함만이 고요함을 찾는 뭇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창작물이다. 장자는 공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 것이다. 그 가르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덕이 충만했던 왕태의 가장 큰 특징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 ‘고요함’에 있다. 그야말로 맑은 거울 같은 마음을 가졌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비추어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왕태는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을 바로 하고 고요히 멈춰 있기만 하였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왕태에게 자신을 비춰 보고 삶을 바로 살기로 한다. 그야말로 가르침의 최고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들이 비춰 보아도 왕태와 같아진다. 왕태는 사람들에게 삶을 바로 살라고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서 배우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고요히 있을 뿐...
우리는 가르친다는 것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습관을 바꾸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노력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