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소통방식의 다양성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의 삶을 반영한다. 그러기에 언어를 문화의 색인이라고까지 말한다.
한 민족은 그 민족 나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독특한 상상, 감정 및 사고방식도 아울러 지닌다. 이들은 그대로 언어에 반영되는데, 어휘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모든 언어의 어휘는 해당 문화권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반영한다. 남부 인도의 코가 부족에게는 중요한 천연자원인 대나무를 표현하는 일곱 가지 단어가 있지만 열대지방이라 눈을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반면에 일 년 내내 눈에 묻혀 사는 이누이트족에게는 눈의 상태에 관한 수많은 단어가 있다. 내리는 눈, 바람에 휩쓸려온 눈, 녹기 시작한 눈, 단단해서 뭉쳐진 눈 등 눈에 관한 단어만 스물네 가지나 된다. 이누이트 말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나라 말에도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꽤 여러 가지다. 싸락눈, 함박눈, 진눈깨비, 가루눈, 가랑눈, 마른눈, 진눈깨비, 눈보라, 살눈, 잣눈 등등......
그런데 문화권에 따라 언어 소통 방식이 다르다. 에드워드 홀은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로 이를 구분하는데 상황적 단서에 의존하는 고맥락 문화는 함축적이며 단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행간을 읽는 간접적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보인다.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고맥락 문화권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목표가 화자와 청자간 조화와 유대를 증진시키는 것이기에 문장의 의미나 진실성보다는 전반적인 감성의 표현이나 공손함이 중시된다. 이 때문에 고맥락문화권의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을 꺼려하게 된다. 이에 비해 정교한 언어 메시지 전달을 중시하는 저맥락 문화는 언어 표현이 좀 더 직접적이고 명시적이며 정확하다. 말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게 커뮤니케이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달리 말해 동양권 언어는 관계지향적이고 서양권 언어는 대상 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맥락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전달하는 내용이 같아도 상대방의 지위나 자신의 지위에 따라 다른 단어가 사용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속담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반말 잘못 쓰다가는 큰 코 다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남녀노소, 선생이나 제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시간에 관한 관념도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시간이란 객관적 실재라기보다는 일종의 약속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어떤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나의 활동을 다른 사람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화권에 따라 시간 개념이 다르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일 시간 문화권인 서양에서는 시간을 선형적이고 관리 가능하며 세분된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복합 시간 문화권에서는 시간을 총체적으로 취급하며 정한 시간 없이 수시로 하는 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 복합 시간 문화권 사람들은 시간은 실체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따라서 단일 시간 문화권에서처럼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시간관은 자연발생적이며 비구조화된 특성을 지닌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다. 이들 문화권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끝내려 하기보다는 사람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단일 시간 문화권 사람들은 시간을 순차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복합 시간 관을 가진 사람들은 동시적 시간관을 가진다. 이들은 시간 엄수를 고집하지 않으며 모임 시간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 앞 뒤로 15~30분 걸쳐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양한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는 순차적 시간 문화권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동시적 시간 문화권 사람을 모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어느 회사에서 한국인 관리자가 일을 보러 상사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외국인 상사는 통화 중이었는데 자신을 보고 왼손을 잠깐 들어 보이고는 자신이 방에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전화를 하더니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맞아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전화를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 당장 환영하지 않은 것, 용건이 끝날 때까지 자신을 서 있게 한 것은 동시적 시간 문화권 사람에게는 일종의 무시나 모욕으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 메타포’란 개념을 잠시 빌려올 필요가 있다. ‘문화 메타포’는 미국의 마틴 개논 교수가 사용한 개념으로 국가 구성원 대부분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동일시 기준으로 삼는 대상, 활동, 문화적 관행을 일컫는다. 간단하게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코드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그의 저서 <세계 문화의 이해>에서 개논 교수는 세계 스물세 개 국가의 문화 메타포를 소개했다. 프랑스의 ‘문화 메타포’는 포도주, 스페인은 투우, 브라질은 삼바, 이스라엘은 키부츠와 모샤브, 한국은 김치다. 독일의 문화 메타포는 심포니, 이탈리아는 오페라, 영국은 벽돌집, 태국은 왕실, 중국은 각 가정에 마련된 제단, 폴란드는 마을의 가톨릭 교회, 러시아는 발레, 인도는 시바 춤, 일본은 정원, 벨기에는 벨기에산 레이스, 터키는 커피 하우스, 나이지리아는 시장, 스웨덴은 주말별장 스투카인가 하면 아일랜드의 고유 언어, 게일어처럼 무형의 문화 메타포도 있다.
미국의 문화 메타포는 ‘외로운 카우보이’나 ‘야구’가 아니라 ‘미식축구’다. 미국에서 스포츠, 정확하게 스포츠 경기 관람 또는 시청은 재미를 주는 여가활동을 넘어 일상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열정을 발산하고 소속감과 정체감을 표현하는 대리 만족 수단이다. 그중에서도 미식축구는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스포츠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스포츠 관람, 시청자 중 43%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으로 미식축구를 꼽았다. 2위인 농구의 12%와 비교하면 격차가 실감 난다. 미식축구를 다른 스포츠와 구별 짓는 ‘허들’은 미국의 ‘행동지향적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선수들은 각기 포지션이 다르고 다양한 배경과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으나 허들에 들어가면 팀의 승리를 위해 상호 의존하고 협력한다. 행동지향적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의 일차적 관심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상황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한 번에 하나씩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하며 잘게 쪼개서 해결한다. 미식축구에서 허들은 경기를 일단 작은 과제로 분할한 뒤 단시간의 포지션 재평가를 통해 과제를 배분하고 지속적 전술로 이를 실행한다. 20세기 초 테일러에 의해 개발된 미국식 제조방식은 미국 경제의 ’ 허들‘이다. 포드의 미국식 제조방식은 디자인을 표준화하고 부품과 제조과정을 규격화하여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다. 표준화와 규격화는 ‘시간은 돈’이라고 여기는 미국인들의 시간 의식과 직결된다. 미국인들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함께 모여 임시 위원회나 팀을 만든다. 이른바 헤쳐 모여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나라다.
이처럼 그 나라의 문화 메타포를 이해하면 소통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대 간에도 문화코드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그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