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다르다

이명박과 봉준호 감독

by 화니샘

자기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여기서 자신감이 매우 중요한데 단순히 “자신감을 가지면 좋다”는 차원을 넘어서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바로 이 ‘자신감’이다.


과도한 자신감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은 이명박이다. 그는 자수성가를 이룬 흔하지 않은 인물로 입지전적인 성취를 이루어 냈지만, 이러한 성공이 과도한 자신감을 불러 왔다. 그가 어떤 사안에 접근하거나 비판세력을 논박할 때 습관적으로 내뱉는 “그거 내가 경험해봐서 다 안다.”라는 말은 과도한 자신감의 극치를 보여주는 예이다. 이는 일정한 틀에 자신의 사고가 얽매여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치명적 단점으로 작용한다. 개별 사안에 이르면 그의 경험의 한계가 극명해진다. 자신의 개별적 경험에 비추어 나도 안다는 식의 포괄적 인식은 인간의 개별성을 무효화시킬 뿐 아니라 그로 인한 개인의 고통이나 기쁨 같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로 인해 그는 통제 불능의 자신감을 가진 권위적 인물이 되었고 ,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개인적 성취마저 모두 날려 버린 상태로 추락했다. (출처 : 정혜신 <사람 vs 사람>)


이에 반해 영화 <기생충>으로 잘 알려진 봉준호 감독은 ‘외면의 나’가 인정받는 것에 비해 ‘내면의 나’를 다소 낮게 평가하는 사람의 예에 속한다. 이는 겸손과는 조금 결이 다른데 무척 편안한 느낌을 준다. 스스로를 잘 통제하고 있는 사람을 볼 때의 안정감,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주는 신뢰감이라 할까? 이는 봉준호가 가지고 있는 숨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봉준호는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도 장르를 고집하지 않을뿐더러 딱 떨어지는 결말로 이끌지도 않는다. 한 방향으로 몰아가다가도 중간에 한 번 멈춰 서서 삑사리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의 부조리한 유머나 재치가 발휘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심지어 그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소감에서조차 공을 아티스트들과 배우에게 돌렸고 자신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으로 표현했다.


봉준호는 대한민국에서뿐 아니라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감독이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가 영화 만들 때 강박증이 있고 개봉할 때마다 실패를 경험한 감독으로서 관객의 반응에 신경이 쓰인다고 말한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였던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하고서 그는 영화를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봉준호라는 영화 거장이 탄생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그의 이런 자존감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른다.


이명박과 봉준호는 똑같이 당당하지만, 그 근원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제삼자가 평가하는 나와 자신들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차이와 갈등을 어떻게 인식하고 조정하느냐에 따라 형성된 이명박과 봉준호의 고유한 색깔이다. 이명박이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을 보인다.”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책을 썼다면 봉준호는 <설국열차>처럼 “희망은 새로운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전 인류적 관점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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