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
예를 갖춰 말한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표시이다. 인도에서는 “나마스테”라고 말하며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이는 상대의 내면에 깃든 신을 존경한다는 의미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처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 묻어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존댓말이다.
존댓말은 말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나 상대방에게 존중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쓰는 말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중요한 언어습관이며, 과거 왕들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신하에게는 경어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존댓말이 예전처럼 쓰이지 않고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조차 더 친근하다는 이유로 존댓말보다는 반말을 많이 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마도 서구화되어 온 생활의 변화 양상이 언어 습관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는 허례허식에 치우친 우리의 전통 예법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말은 윗사람에 대한 경어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유난히 말의 위계질서가 강하게 작용하는 반면(즉 비상호적인 존칭), 다른 나라 말에서는 존댓말에서도 상호주의가 원칙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거리를 두어 예를 표하는 공적이고 예의 바른 말로써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존중하는 말을 쓰면 나도 존중하는 말을 쓴다는 것이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가족이나 친한 사이끼리 존댓말을 사용하면 오히려 너무 예절을 따진다거나 거리를 두려 한다고 여겨져 실례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존중받고 싶으면 존중하라’는 원칙은 서양에서는 말에서부터 적용된다. 동양에서는 존중은 전통적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행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다음과 같은 순자의 말이 그 점을 뒷받침합니다.
“임금은 백성을 이끄는 사람이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모범이다. 그들이 이끄는 소리를 듣고 따르며 모범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니,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백성이 따르지 않고,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따르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면 위와 아래가 서로를 떠받칠 수 없다. 그렇다면 윗사람이 비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이보다 좋지 않은 조짐은 없다. 따라서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바탕이다 “
그러나 존중은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을 향해 이루어질 때 더 큰 빛을 발하게 된다. 존중이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나 행위들이 공존하는 균형 사회로서, 그런 상태가 유지되려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존중은 사회통합과 발전을 위한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상호 간 존중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러한 사례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유성룡은 일찍이 이순신의 병사를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이순신의 면모를 간파했다. 그는 징비록에서 “일찍이 이순신은 한산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장수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전을 논하면 지냈는데 계급이 낮은 졸병이어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와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모든 병사가 군사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전투 시작 전에 장수들과 계책을 함께 논의하여 결정한 까닭에 싸움에서 패하는 일이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상호존중의 미덕은 언어습관에서도 그래도 나타난다. 부부간에도 서로 반말을 사용하지 않았고 하오체를 사용하며 서로 존중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퇴계 이황 선생은 자신보다 26살이나 어린 기대승과 논쟁을 벌일 때에도 절대 반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근대에 이르러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심지어 우리는 자연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비가 온다’고 하지 않고 ‘비님이 오신다’로 표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좋은 언어습관은 근래에 와서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부부간이나 가족 간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늘고 있다. 학교현장에서도 학생들의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존댓말 사용하기를 실천하는 교사의 미담이 종종 소개된다. 장월초 강00 선생님은 ‘오늘도 발표 잘하셨습니다’ 라며 학생들끼리도 존칭을 쓰도록 한 결과 큰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폭력 사건이 없어지고 아이들 간의 작은 다툼도 줄어들었다며, 아이들 스스로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런 미담 사례에서 보듯 존댓말을 사용하면 자기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느끼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까지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로 간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친밀감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친밀감을 더 높일 수 있다. 특히 학교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권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존중의 마음이 더해져 오히려 권위를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