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짤막한 서두>
미뤄왔던 책 읽기를 하기로 했다. 그간 사 놓고 못 읽었던 책, 북클럽에서 추천한 책을 읽고 간단히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일인칭 단수는 북클럽에서 고른 첫 번째 책이다.
나는 하루키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데 (처음 읽은 책이 내 맘에 안들었기 때문일텐데, 그게 뭔지도 이젠 기억이 안난다), 북클럽에 간 이유가 그래도 뭐든 보라는 거 읽어보자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거부없이 잘 받아들고 왔다. 하루키 작품을 읽은지 워낙 오래 되었고, 시간이 흐르다보면 독서 스타일도 달라지기 마련이니, 혹시나 이 책은 마음에 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서.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옹고집이고 내 독서 스타일은 1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가 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일인칭 단수>라는 이 작품이 단편소설집이라는 것. 나는 소설은 좋아하지만, 그 깊이를 음미할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단편은 그리 즐기지 않는다.
읽은지 시간이 꽤 지났고 딱히 감동받은 부분이 없어서 줄거리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북클럽 멤버 가운에 하루키의 팬이 있어서 들은 바에 따르면, 하루키가 젊은 시절에는 일인칭으로 작품을 썼으나 나이가 들수록 일인칭으로 서술하는 것이 어색해져서 잘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시 일인칭을 써서 이 단편집을 써낸 데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일인칭 인물들이 흡사 하루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낀단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소설 인물에 본인을 투영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글을 써도 그리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 책이 자전적 소설인지 그냥 에세이인지, 완전 픽션인지 따질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단편 하나하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당히 모호하다는 점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첫 번째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두 번째는, 단편집인데도 불구하고 딱히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성적인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다.
말하는 원숭이 이야기에서 작가 스스로도 언급했다시피, 이런 이야기를 갖다주면 출판사조차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데요?"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작가는 애초에 이번 단편선에 주제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인칭 단수>는 작가가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 상상했던 것들을 소품처럼 풀어놓은 것이지, 독자에게 뭔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없다고 봐도 좋겠다. 사실, 소설에 주제가 있어야 한다고 누가 꼭 정했던가? 받아들이는 사람이 즐거우면 되는 일이다. 이 점에서 이런 유의 작품은 하루키 같은 사람이니까 쓸 수 있는 것이고,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름없는 무명 작가가 이런 글을 썼더라면 어디서도 출간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어찌보면 작가의 이름으로 파는 작품이라 할 수도 있는데,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라고 해서 언제나 특별한 메시지를 주려고 머리 싸매가며 애쓸 의무는 없지 않은가?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이제 독자의 평이나 판매 부수에 상관하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니.
아무튼, 그래서 이 작품에는 주제가 없고, 단순히 작가 자신을 투영했다는 것보다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북클럽에서도 한 번 제기한 문제이긴 한데, 왜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섹스 장면을 넣어야 했는가? 단카를 짓는다는 이름모를 그 여자와 꼭 섹스를 해야만 단카집을 받고 그 여자의 속과 미래를 알 수 있는 것일까? 원숭이는 꼭 여자를 보고 (정신적이든 마술이든 뭐든 간에) 사랑을 경험해야만 이야기가 성립되는가?
"이런 장면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주의는 절대 아닌데, 내가 이 질문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정도가 뭐 그리 야하다고 그래요?", "난 그런 게 좋던데"의 반응이었다. 이런 유의 의문을 제기하면 늘 보는 반응이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이야기를 진행 못하기 일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왜 꼭 그 장면이 들어가야 했는가? 내 눈에는 필요 없어 보이는데 혹시 내가 놓친 개연성이 있었던가? 였다.
극작가 체호프가 정한 유명한 법칙이 있다.
1막에 총이 등장했다면 3막에는 반드시 쏴야 한다.
1막에서 주인공이 이름 모를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고, 또 그게 소설 전체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면 끝날 때쯤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밝혀야 한다. 내가 어리석어서 그 의미를 잡아내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일인칭 단수> 섹스 장면에 관해 그런 건 없다. 이에 대해 받아들일 만한 의견은, "대중 소설이다보니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이라기엔 이미 앞에서도 썼지만, 하루키 작품은 역시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단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