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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룡 Apr 22. 2021

아몬드를 읽고서

손원평

북클럽의 세 번째 추천 책. 

난 소설을 좋아하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는 스타일이다. 그 점에서 <아몬드>는 일단 시작하기도 전에 호감이 갔다. 실상 추천 책이다 보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짧기도 하거니와 내용도 재미나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간략한 줄거리

편도체가 작아서 기쁨, 슬픔, 두려움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감정 표현 불능증. 주인공 윤재는 그런 병–병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을 앓는 아이다. 유치원생 시절, 거리에서 맞아 죽어가는 아이를 목격하고 TV를 보느라 신나 있는 구멍가게 아저씨를 재촉하지도 않고 건조하게 사람이 죽어간다고 말했던 아이. 눈앞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칼에 찔리거나 망치에 맞는 것을 보고도 슬픔을 느끼지 못한 아이. 문제아 곤이에게 두드려 맞으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 아이. 그렇게 혼자 남은 윤재는 문제아 곤이를 통해 할머니와 어머니를 공격한 남자의 심리를 이해해보려 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와 감정에 휘둘리는 아이

주인공 설정이 독특한 반면, 그 짝이 되는 곤이는 흔해빠진 캐릭터다. 엄마가 잠깐 한눈 판 사이 누구에게 끌려갔건 노느라 혼자 뛰어갔건, 아무튼 사라졌던 아이는 불법체류자 중국인 부부 밑에서 자라다가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 필연적으로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범죄를 연상시키는 이런 역할에 구태여 '중국인'이라고 국적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곤이가 중국인과 함께 살았기에 중국에 관한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도 아닌데. 부디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조차 차별을 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건 다음에 쓸 <선량한 차별주의자> 덕분에 얻은 생각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이를 잃은 후 곤이 엄마는 점점 실의에 빠져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곤이를 찾아냈으나 그때 곤이 엄마는 이미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고, 곤이는 그런 엄마에게 보이기엔 문제가 있는 아이였다. 게다가 곤이의 본래 부모는 대학 교수와 기자라는, 소위 고급 직종 사람들이었으니.... 죽음을 앞둔 아내가 실망할까 봐 남편은 곤이 대신 우리의 주인공을 대리로 내세운다.


엄마를 만나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기에, 곤이가 크게 다쳤거나 말을 못 하는 상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단순히 문제아였을 뿐이어서 살짝 김이 새기는 했다. 한편으로는 곤이 아빠의 지나친 완벽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 일로 곤이는 주인공에게 앙심을 품고, 마지막까지 엄마를 보지 못해 외로움에 시달린다. 곤이는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사실은 마음 약한 아이다. 어려서 정신적 상처를 받은 탓에 감정에 크게 휘둘리고, 그런 자신이 싫어서, 혹은 무서워서 더욱 엇나가 불량배 집단까지 들어간다. <아몬드>는 감정을 모르는 아이와 감정에 휘둘리는 아이의 이야기다. 감정을 모르는 윤재가 감정에 휘둘리는 곤이보다 훨씬 강한 것을 보면, 결국 인간의 연약함은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곤이를 불량배 집단에서 꺼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다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는 깡패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보통 이럴 때 어떻게 나오는지 대부분 독자는 다 알 것이다. 어쨌거나 그 험한 탈퇴 과정은 겁을 모르는 윤재가 해결했으니,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주인공은 답을 찾았을까

곤이를 통해서 할머니와 엄마를 해친 남자의 심리를 알고 싶었다던 윤재. 그럼 그 답을 찾았을까? 그런 기술은 없다. 아마도 "그 남자의 심리를 알고 싶다"는 곧 "감정을 알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 같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감정을 찾았으니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해도 좋을 듯하다. 곤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여자에 눈을 뜨면서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그런 건 그냥 모른 척 해주자.


연상되는 책

아몬드를 읽고 보니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 생각난다. 그레임 심시언의 <로지 프로젝트>다. 로지 프로젝트의 주인공 돈 틸먼은 분석적이고 계획적인 유전학 박사지만,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로 사회성이 부족하다. 이성에 집착하고 감성이 부족한 것이 아몬드의 윤재와 꼭 닮았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계획한 것과는 정반대인 여자 로지를 만나면서 감정에 눈을 뜬다. 

아몬드는 아이의 관점이라 좀 더 풋풋하고 가벼워서 나 같은 성인에게는 크게 와 닿는 에피소드가 없는데, 로지 프로젝트는 성인이 보기에 좀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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