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북클럽에서 선정한 다음 책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반쯤 읽고서 글을 써보려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저녁형 인간이다. 아니, 늦은밤형 인간이라 해야 할까? 그리고, 아침형이냐 저녁형이냐는 인생에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개똥철학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오래전에 봤던 우스운 말이 하나 생각났다.
"제 경험상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아침형 인간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것"
뇌과학자 러셀 포스터의 TED 강연에서 나온 말인데,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강연에서 저 말은 "잠자는 시간이 충분하고 그 질만 훌륭하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든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뜻으로 썼단 것이다.
좋은 내용이니 링크도 걸어본다.
나는 하루는 왜 48시간이 아니냐고 투덜댈 만큼 자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9시간을 보내고 잠에 8시간을 쓰면 내 몫으로 남는 건 7시간뿐인데, 그 시간도 각종 일상생활에 쓰고 나면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 밖에 없지 않은가? 파릇파릇한 내 청춘을 중에 날 위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3-4시간이라니, 참 슬픈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내가 그 시간을 아침에 할당하든 밤에 할당하든 바뀌지 않는다. 차이는 그 시간에 뭘 하느냐에서 비롯될 뿐.
그렇기에 책 제목만 보고도 반감이 들었다. "또 아침형 인간 타령인가? 언제 적 이야기를 또 하는 거람?"
그래도 북클럽에 참여해야 하니까 일단 책은 펼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책의 주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행동 양식"이다.
저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마인드로 임했기에' 성공한 것 같다. '새벽 4시 30분 기상'은 그 도구일 뿐이다.
(일찍 일어나서) 그 시간에 명상하고 그날의 계획을 세운다. --> 허둥지둥 하지 않아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열리는 모임에 참가한다. --> 주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나오는 모임이므로 인맥과 경험에 도움이 되었다.
(일찍 일어나서) 가고 싶었던 로펌에 개인적으로 지원 메일을 보낸다. --> 덕분에 원하던 곳에서 경험을 쌓았다.
아무리 봐도 일어나는 시간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겠지만, 모든 모임이 아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반드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획득한 이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저자 자신도 "저녁에는 방해가 많아 나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거나 "야근보다는 아침에 일하는 것을 즐긴다"라고 했듯, 일어나는 시간이 결정적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제목을 이렇게 지은 까닭은 무엇일까?
혹시 브랜딩 때문이 아닐까?
"하루 몇 시간 명상 시간을 가지세요", "안될 것 같아도 일단 덤벼보세요."는 이미 다른 곳에서도 많이 써먹은 말이다. 이런 걸로는 차별화가 어렵다. 하지만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세요"는 상당히 자극적이고 색다르다. "6시에 일어나세요"는 있었지만 그로부터 장장 1시간 반을 더 당겼으니까. 저자가 해온 성공을 위한 다양한 활동 중에서 남들과 차별화할 부분은 "새벽 4시 30분"에 있기에 그걸 제목으로 내세우지 않았을까?
책을 반쯤 읽었더니 저자의 다른 행위, 두려움 없이 원하는 것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이 4시 30분에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처음의 반감은 많이 줄었다. 원하는 목표를 세우고 그쪽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는 사람 치고 실패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지만 막상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른 제목으로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한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요즘 사람들은 자꾸만 뭔가를 해야한다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것 같다던 말. 벌써 십 년 전의 일인데,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대부분 자기계발서나 경제/투자 설명서였던 데서 나온 이야기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서점에서 재미를 찾기 힘들었다. "~~ 해라", "~~ 처럼 살아라", "~~ 해서 돈 벌기" 투성이었던 서점 진열장, 생각만 해도 삭막하다. 지금은 좀 달라져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종종 등장한다. 뭐든 열심히 해서 성공하자는 얘기 말고도 소소한 행복과 평화를 찾자는 얘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일찍 일어나서 내 하루를 낭비 없이 잘 설계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게 내 꿈을 이뤄준다면, 미래의 나를 좀 더 행복하게 해 준다면 뭔들 못할까. 하지만 때론, 남들이야 잘 나가건 말건,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를 하건 말건 나만의 길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수년 전 브런치 인기작이었던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 내용도 100% 공감하진 않지만, 성공이 노력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서 언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