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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룡 Jan 16. 2022

딩씨 마을의 꿈, 예쁜 꿈이 아니었어

옌롄커

회사가 전자도서관을 도입했다. 평소 전자책을 즐겨보는 터라 반가워하며 들어가서, 내 전자서점 바구니에 잔뜩 담아뒀던 목록을 하나하나 검색해봤다. 


하나도 없었다.


전자도서관은 본래 책이 많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 취향이 너무너무 독특해서 잘 안 들여놓는 건지.


마침 예전에 만든 다른 전자도서관 계정도 있어서, 겨우겨우 비밀번호를 찾아다가 검색해봤더니 딱 하나 나왔다. 바로 <딩씨 마을의 꿈>이다. 


이걸 바구니에 넣은 지가 언제더라? 수년은 훌쩍 지난 것 같다. 뭣 때문에 읽고 싶었는지도 잊은 채 어쨌든 하나라도 나왔으니까 봐야겠다 싶어서 대출했다.


순진하게도 나는 딩씨 마을의 꿈이 예쁜 "꿈"일 거라 생각했다. 전자도서관의 추천 책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눈에 익은 탓일까. 하지만 웬걸, 예쁘기는커녕 처절한 꿈이었다.

작가 서문을 보면 대충 예상은 할 수 있다. 옌렌커는 중국의 문제점을 다룬 소설을 써서 출판금지를 당한 적 있는, 중국의 문제 작가다. <딩씨 마을의 꿈>도 오래전 정부가 주도했던 매혈 운동 때문에 에이즈가 퍼진 시골 마을 이야기를 담았을 뿐 아니라 관료와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는 일까지 묘사했으니, 확실히 중국 정부가 뜨끔해할 만하다. 물론 작가 자신은 정부를 비난할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이 책은 출판 후 3일 만에 출판금지당했다. 


딩씨 마을에 에이즈가 퍼진 까닭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아직도 중국 시골 마을에는 에이즈 환자가 많다고 한다. 매혈 운동은 활발히 벌여놓고서 무지나 귀찮음 때문에 위생을 소홀히 하다 보니(소설에는 한 주사기를 세네 사람에게 쓴 이야기가 나온다), 에이즈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당시 중국에서 피를 파는 것이 얼마나 돈벌이에 좋았는지는 다른 소설 <허삼관 매혈기>만 봐도 알 수 있다. <딩씨 마을의 꿈>에서처럼 "피를 팔아서 2층 집을 짓고, 마을 전체가 발전할" 정도이니 딱히 나쁠 것도 없다. 게다가 피란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고, 자연적으로 자꾸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셈 아닌가? 덕분에 전통적 관념 때문에 처음에는 피 뽑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던 시골 사람들도 부자가 된 이웃을 보면서 차차 생각을 돌린다.


'딩씨 마을'이라는 이름대로 이 마을은 대대로 딩씨가 살아온 터전이다. 물론 다른 성씨 사람도 들어와 살지만 그래도 딩씨가 토박이라서 어른 노릇을 한다. 화자인 딩샤오창(소설 시점에 이미 죽음)은 딩씨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딩수이양의 손자다. 딩수이양은 공부도 제법 해서 한때 아이들을 가르쳤고, 정식 교사가 온 다음에는 학교에서 종 치는 일만 했는데도 마을 사람들로부터 "선생"이라고 불렸다. 그런 탓에 이장이 매혈을 권장하라는 정부의 명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장 대신 원로로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그의 아들 딩후이는 사업 눈이 밝아서, 돈이 되는 것을 꿰뚫어 보고 직접 채혈소를 차려서 사람들 피를 뽑고(한 주사기를 여러 명에게 쓰고, 500cc라고 해놓고 600cc나 뽑는 등 알뜰하게) 그걸 팔아 부자가 되었다. 게다가 어찌나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지 남들은 2층 집  지을 수 있는데 딩후이만 3층 집을 지을 정도였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 마을에 열병이 돌고, 그게 채혈 때문이라는 게 알려지자 딩후이를 원망한 마을 사람들은 몰래 독을 풀어 그 집 가축을 죽였고, 나중에는 딩후이의 아들 딩샤오창까지 독으로 죽게 만들었다. 그렇게 죽은 딩샤오창이 할아버지 딩수이양의 입장에서 그 후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한 게 바로 <딩씨 마을의 꿈>이다.


죽음도 인간의 욕망을 막을 수 없다

딩후이는 호승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딩수이양은 아들더러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사죄하라고 했지만, 딩후이는 오히려 자신이 더 평화롭고 더 부유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복수를 하려고 한다. 사업 머리가 있는 그는 나라에서 에이즈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주는 관을 마치 제 것처럼 판매하고, 미혼으로 죽은 사람들을 영혼 결혼시키는 중매쟁이가 되어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공짜 관을 돈 받고 파는 것도 모자라 관계에도 진출하고(정말 그런 건지, 문서를 위조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더 높은 사람에게 끈을 대려고 죽은 아들 샤오창을 높은 관리의 죽은 딸과 영혼 결혼시키려 했다. 이때 화자인 샤오창이 딩수이양에게 "할아버지, 가기 싫어요! 아버지를 말려줘요!"라고 외치고, 결국 딩수이양이 아들 딩후이를 때려죽임으로써 이야기는 끝이다.


딩후이는 부와 영달을 좇고, 자신을 흉본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남들이 널 죽이려 하니 다시는 딩씨 마을에 오지 말라"라고 했는데도 유유히 들어와서 으스댔다. 물론 그를 죽인 사람은 남들이 아니라 아버지였지만, 죽음의 경고조차 두려워하지 않은 셈이다.


딩후이만이 아니다. 에이즈에 걸려 죽을 날을 받아놓은 마을 사람들 역시 죽기 직전까지 욕망을 내려놓지 못했다.

딩후이의 동생 딩량은 에이즈에 걸렸고, 사랑하는 부인과 헤어져 에이즈 환자 집합소인 학교에서 살게 되었다. (강제는 아니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자고 딩수이양이 환자들을 학교로 불러 모았다) 한창 젊은 나이인데 부인이 에이즈 옮는다고 자기 몸에 손도 못 대게 하자, 그는 사촌의 부인이자 역시 에이즈에 걸려 남편에게 쫓기다시피 학교로 온 양링링에게 수작을 건다. 실상 링링도 한창 젊은 나이에 소박을 맞아 외로워하던 차여서, 둘은 곧 밀회를 즐기게 되었다.

두 사람 사이를 알아내 딩량의 부인과 양링링의 남편에게 일러바치고, 이걸 약점 삼아 딩수이양에게 학교 관리 전권을 내놓게 만든 쟈껀주와 딩유진은 권력에 눈먼 자들이다. 딩수이양 대신 학교를 맡게 된 두 사람은 마치 학교의 물건을 맘대로 처분하고, 사람들에게 시중을 받다. 제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물건을 주고, 심지어 마을의 오래된 나무까지 베어 관을 만들 수 있게 허가하는 둥 마치 마을의 왕처럼 권력을 누려댔다.


이런 큰 욕망도 있지만, 소소한 욕망도 있다. 에이즈 환자들은 학교에 모이면서 저마다 식량을 가져오는데, 쌀이 아니라 돌멩이를 넣어 오는 사람이 있어서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또 남들이 가져온 물건을 훔치는 사람도 나타났다. 대부분 가족에게 어떻게든 뭔가 더 남겨주려는 목적에서였다. 죽기 전에야 가족의 소중함이 떠오른 걸까.


딩씨 마을 이야기는 2011년에 영화로도 나왔다. 그 배경을 가져오고, 딩량과 양링링의 이야기를 주 소재로 삼은 <최애(인생은 기적)>이다. 딩량 역할은 곽부성이, 양링링 역할은 장쯔이가 맡았다(등장인물의 이름은 소설과 다르다. 아마도 금서여서?)

생각해보면 딩량과 양링링의 사랑은 그나마 다른 이들의 욕망에 비해 조금 견디고 봐줄만하다(그래도 난 별로지만). 딩량은 양링링의 남편 딩샤오양에게 전 재산을 주고 서로 이혼하게 한 다음, 양링링과 정식 부부가 되었다. 딩량이 열이 오르자 양링링은 찬물을 뒤집어쓰고 딩량을 안아 열을 내려주고서 자신이 먼저 죽었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 이야기가 주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영화 <최애>. 출처: 바이두 백과

작가가 말하는 건 중국 사회만의 부조리가 아니다

<딩씨 마을의 꿈>을 읽으면, 배경이 중국 시골 마을일 뿐 반드시 중국에서만 벌어질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의료 지식 부족이나 부패한 관료, 인간의 욕망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영화 <도그빌>은 순박하고 선량하던 시골 사람들도 기회가 생기면 얼마든지 잔인하고 이기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딩씨 마을의 꿈>도 다르지 않다. 에이즈가 없을 때는 피 파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며 잘 살던 사람들도, 에이즈가 생기자 원흉을 찾아 원망하고, 복수하고, 남들이야 어찌 되건 그간 터트리지 못했던 욕망을 마음껏 발산했다. 

딩수이양이라는 선량한 사람이 있지만, 과단성 부족과 판단력 부족으로 사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는 착하지만 힘없고 무능한 지식인으로서, 결국 제 손으로 아들을 죽이는 최악의 길을 걷게 되었다. 관리라는 사람들은 제 잇속 챙기느라 바빠 시골 마을 상황을 직접 챙길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게 과연 딩씨 마을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쉽지만 어렵고, 차분하지만 격정적인. 하지만 아픈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작가는 딩수이양의 꿈을 통해 뭘 말하려는 것일까? 그 속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나오는 인물이 다양하고 인물마다 제각각 이야기가 있어서 한 번 보고 전부를 꿰뚫기는 쉽지 않았다.

<딩씨 마을의 꿈>은 심각한 상황을 다소 유머러스하게 푼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생각나게도 하고, 한편으로는 죽은 아이 시점에서 차분하게 사태를 조망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소년이 온다>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비록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야기지만, 작가의 문체나 서술 스타일은 마음에 든다.


아는 미국 사람에게 <오징어 게임>이 왜 그렇게 인기 있느냐고 물었더니, "미국에는 밑바닥 인생과 그 더러움을 저렇게 대놓고 그리는 작품이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은 적 있다. <기생충>이 인기를 얻은 것도 그런 이유가 한 몫하지 않았을까? 반대로 우리나라는 그런 내용을 많이 다루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인데도 지독하고 처절하고 잔인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작품들을 즐겨보지 않는다. 

<딩씨 마을의 꿈>은 그런 영화만큼 처절하거나 잔인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인간의 추악한 면을 다뤘으니 끝까지 보고 나서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다음에는 좀 더 희망에 찬 소설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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