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프롤로그 + 1화 : 손끝의 온기

손끝의 온기

by 유유정

겉과 속 프롤로그 + 1화 : 손끝의 온기

Written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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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겉과 속 – 진심의 얼굴》은
겉으론 거칠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한 한 여자 ‘지연’을 중심으로,
진심과 위선이 뒤섞인 세상 속에서
‘착한 척’이 아닌 진짜 선함이 무엇인지 묻는 이야기입니다.

상처와 온기가 공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누군가의 냉기 속에서도 여전히 따뜻함이 남아 있음을 전합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지연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진심의 온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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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거칠게 보여야만 버틸 수 있었던 세상.
그럼에도 손끝만은, 여전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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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아침,
지하철역 계단 아래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폐지 가득 담은 짐보따리를 등에 업고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옆을 피해 빠르게 걸었다.
서류 가방, 이어폰, 무표정한 얼굴들.
누군가의 하루는 바쁘게,
누군가의 하루는 위태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계단 위쪽에서 짜증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 좀 비켜요!”

그 말과 함께,
거친 어깨가 스치며 할머니의 몸이 툭 밀렸다.
균형을 잃은 할머니는 계단 아래로 비틀거리며 넘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 앞에 있던 사람들은
제각기 본인 몸이 다칠까 봐 모두 비켜섰다.
하지만 지연은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본인도 모르게 몸을 날려
넘어지려는 할머니를 붙잡았다.
뜨거운 커피가 팔 위로 쏟아졌지만,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손끝엔 놀라울 만큼 따뜻한 힘이 남아 있었다.

“휴... 괜찮아요? 이까짓 폐지 팔려다 병원비가 더 들어요.”

“됐어… 병원 갈 돈도 없는데 뭘.”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연은 지갑을 열어 돈 몇 장을 쥐여줬다.
“이 돈 다른 데 쓰지 말고 병원 가요.
안 가면 나도 나 다치게 했다고 경찰서 갈 거예요.”

말은 거칠었지만,
목소리 속엔 이상하게도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지연은 흘러내린 커피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팔에는 붉게 데인 자국이 번져 있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요즘 젊은것들 참… 싸가지가 없네.”
“어디서 저런 말버릇을…”

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떨어진 폐지를 주웠다.

그때 할머니가 작게 말했다.
“아니야, 이 처자는 날 도와준 착한 처자야.”

지연은 잠시 멈췄다가,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착한 게 아니라, 할머니가 내 앞에 떨어진 거뿐이에요.
다음부터 앞 잘 보고 다니세요. 진짜 제대로 다치기 전에.”

그녀의 눈가엔 묘한 쓸쓸함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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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의 과거 – 상처의 시작

고등학교 시절,
지연은 조용한 아이였다.
늘 끝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던 아이.

그녀를 괴롭히던 아이들 중
가장 잔혹했던 건 윤주였다.
부유하고 예쁘고, 모두가 좋아하던 아이.

“냄새 나, 집이 하수구야?”
“화장 좀 하지 그래? 거울도 없지?”

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굣길, 누군가 가방을 걷어차도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날도 교실 끝자리에서
윤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런 애가 왜 우리 반인 거야, 진짜 짜증 나.”

그 말에 반 친구들이 웃었다.
지연은 손끝으로 책을 쥐었다.
손톱 밑이 하얗게 변할 만큼.

윤주는 지연의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빠뜨렸다.
청소시간에는 걸레를 얼굴에 던지며 말했다.
“이런 거, 더러운 년이 하는 거야.”
심심하면 “지연이 너 왜 이렇게 더러워?” 하며 물을 붓기도 했다.
지연은 죽음을 생각할 만큼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그날 밤, 거울 앞에서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강해져야 해.
그래야 다시는 밟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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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뒤, 윤주는
원조교제 사건으로 퇴학당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아이들은 그녀를 비웃었다.

하지만 지연은 웃지 않았다.
복수의 쾌감도 없었다.
그저 허전했다.

그 사건 이후,
지연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점점 거칠게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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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 거칠지만 따뜻한 여자

이제 스물아홉이 된 지연은
다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커피 식기 전에 마셔요.”
“잔 좀 돌려놔요. 손톱 자국 나잖아요.”

손님들은 투덜거렸지만,
지연은 묵묵히 컵을 닦았다.
늦게 퇴근하는 동료에게는
“밥은 먹었어?”라며 도시락을 내밀었다.

말은 거칠었지만,
손끝은 여전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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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불을 끄고 문을 닫으며
지연은 잠시 유리창 속 자신을 바라봤다.

짙은 화장 아래 묻힌 얼굴,
무표정 속에 잠시 스친 미소.
그녀의 팔에는 여전히
그날 커피에 데인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할머니 괜찮으실까… 휴, 됐다.
누굴 걱정하는 거야, 나나 챙겨야지.”

그녀는 작은 숨을 내쉬며
불이 꺼진 다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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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사람들은 겉만 보고 판단한다.
하지만 손끝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겉과 속〉의 첫 번째 밤,
지연은 세상이 차가워도
자신의 온기만큼은 지켜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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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안내
〈겉과 속 – 진심의 얼굴〉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새로운 이야기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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