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지는 어둠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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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7화 — 밝혀지는 어둠의 한 조각
Written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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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남아 있는 말들
집을 나서던 순간 들었던 속삭임.
약을 더 먹여야 한다는 말,
누군가 사라져야 한다는 말,
입술 사이로 은근히 새어 나오던 비웃음과 차가운 기운.
그 말들은 지연의 귓속에
아직도 축축하게 걸려 있었다.
버스 창문 밖으로 스치는 아침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심장은 이유 없이 불안하게 뛰었고,
손끝엔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민석 씨… 괜찮을까.’
그 생각은 버스가 멈출 때마다
조금씩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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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낯선 침묵
평소의 분주함이 사라진 공장은
기계음만 무겁게 울리고 있었다.
지연이 자리로 향하는데,
평소라면 조용히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오늘은 묘하게 다른 눈빛으로 다가왔다.
지연이 놀라 돌아보자
아주머니는 짧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
“지연 씨… 민석이는 괜찮아?
내가 민석이 친엄마를 알고 지냈거든.
괜히 걱정이 돼서.”
지연의 가슴이 순간 조여들었다.
“…친어머님을요?”
아주머니는 먼 기억을 더듬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집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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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한다는 예감
지연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민석 씨 어머님은…
어떻게… 되신 건가요?”
그 질문이 떨어지자,
아주머니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지연 씨…
이건 민석인 아직 몰라.
지연 씨가 혼자 알고 있어줘.”
그 말투에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무게와
꺼내고 싶지 않은 슬픔이 동시에 실려 있었다.
아주머니는 한 번 더 주변을 살핀 뒤
아주 낮은 목소리로 과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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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되는 진실 — ‘그때’
“민석이 엄마…
참 착한 처녀였어.
세상물정 모르고 남 말만 믿고 살던 사람이었지.”
아주머니의 손끝이 떨렸다.
“근데 그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걸
정말, 꿈에도 몰랐던 거야.”
지연의 숨이 멎었다.
“본처랑 그 식구들이
동네 한복판에서 난리를 쳤지.
‘불륜녀’라고 소리치고…
사람들 앞에서 밀치고, 발로 차고…
얼굴도 못 들게 해야 한다고…”
지연의 손끝이 차갑게 변해갔다.
“근데 더한 건… 그 남자였어.”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민석이가 자기 애 아닐 거라고 했어.
그렇게… 외면했지.”
지연의 가슴이 깊게 내려앉았다.
“그 집은 그 뒤로
싸움 소리, 울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어.
민석 엄마는 점점 말수가 줄고…
점점… 그림자처럼 되어갔지.”
말끝이 거의 들릴 듯 말 듯 떨렸다.
“결국…
그 마음이 버티질 못했어.
그렇게… 가버리고 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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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의 내면에서 부서지는 것
민석의 따뜻한 미소,
지연에게 건넸던 말들,
비를 맞으며 자신을 감싸던 두 팔
그 모든 장면 위로
지금 들은 진실이 조용히,
그러나 잔혹하게 내려앉았다.
민석 씨는… 모르고 있는 거야.
지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젯밤 들었던 속삭임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민석이가 그 일 알면… 일만 더 커져.
그 말의 의미가
이제는 너무나 뚜렷했다.
마치 누군가
보이지 않는 칼날을 꺼내
조용히, 천천히
두 사람의 삶을 잘라내기 시작한 것처럼.
지연은 자신이 숨을 들이쉰 순간조차
느끼지 못한 채
가슴 깊은 곳이 차갑게 일그러져 가는 걸
서서히, 뚜렷하게 느꼈다.
민석을 뒤덮는 그림자도,
그 그림자를 움직이는 손길도
이제 곧 모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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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지연이 알게 된 진실은
과거의 상처가 시간을 건너
얼마나 잔혹하게 현재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폭력이 남긴 잔해는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덮어 둔 진실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고
누군가의 삶을 뒤틀어버린다.
그리고 이제,
그 진실은
지연과 민석
두 사람의 운명을
서서히, 그러나 막을 수 없게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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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은 매주 화,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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