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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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8화 — 무너지는 숨
Written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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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흔들리는 마음
하루 종일
지연의 머릿속엔 민석의 어머니에게 벌어졌던 일들과
윤주와 새엄마가 속삭이던 말들이 뒤섞여
정신이 한 지점에 붙잡히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분노처럼,
어떤 문장은 공포처럼,
어떤 문장은 죄책감처럼 가슴을 찔렀다.
‘왜… 하필 내가 이걸 알게 된 거지?’
지연은 스스로에게 끝없이 물었다.
나 같은 게
뭘 할 수 있을까.
어디서든 상처만 남기고,
누구를 만나도 불행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저주받은 존재인 내가.
그런 내가
날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던 남자를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도와야 한다는 마음은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었지만,
용기라는 건,
정말 한 조각도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지연은
그 무거운 마음을 안고
또 하루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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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 앞에서의 침묵
퇴근 후 민석의 집 앞에 서자
지연의 발끝이 마치 제동이 걸린 듯 멈춰 섰다.
문을 먼저 연 건 민석이었다.
“지연 씨 왔어요?”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얼굴은 어딘가 더 창백하고
눈가엔 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연은 그 얼굴을 보고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늘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왜 이렇게… 아파 보이지?’
그 생각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라
뒷말이 가슴에서 막혔다.
지연은 애써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오늘은… 그냥 왔어요.”
민석은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와줘서 고마워요.
지연 씨 오면… 좀 숨이 쉬어져요.”
그 말이
지연의 가슴을 찢는 듯 내려앉았다.
그 따뜻함을
지금 민석 곁에 드리운 어둠이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그는 모른다.
지연은 침묵한 채
민석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말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
말하면 이 모든 진실이
돌이킬 수 없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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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의 마음 도망과 다짐 사이
잠시 후,
민석이 피곤함에 잠든 모습을 보며
지연은 조용히 창문 밖의 밤을 바라봤다.
머릿속이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민석 오빠도 자기 엄마 일 알면 잘됐다고 할걸.
저 인간 편은 아무도 없어.
민석이가 그 일 알면… 일만 더 커져.
그 목소리가
독처럼, 안개처럼
서서히 지연의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지연은 손끝을 꽉 쥐었다.
손바닥이 아릴 만큼.
“나…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치고 싶었다.
전부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를 만나기 전의 어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그날 그녀를 끌어안던 온기가
지연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여전히 따뜻하게 살아 있었다.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공포를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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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순간
지연은 마지막으로
잠든 민석의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하고 지쳐 보이는 얼굴.
그런데도 묘하게
아이처럼 평온했다.
지연의 입술이 조용히 떨렸다.
“민석 씨…
나… 도망 안 갈게요.”
그 말은
민석이 들은 것이 아니라
지연 자신을 향한 약속이었다.
진실은
이제 더 숨겨둘 수 없다.
누군가는 죽어갈 수도 있고,
이미 많은 것이 무너져 있는데
더는 묵과할 수 없었다.
지연은
자신이 가진 마지막 용기를 끌어올리며
천천히 마음을 굳혀갔다.
민석의 비밀을,
그의 상처를,
그를 향한 위협을
이제 자신이 마주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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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지연이 내린 작은 결심은
거대한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불빛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그 작은 불빛 하나가
절망을 밀어내고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지연의 용기는
아직 흔들리고 작고 약하지만,
그 불빛은 이제
결코 꺼지지 않고
민석과 자신의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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