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 남짓한 내 방 안에서 가장 애정 하는 것들을 소개합니다.
네 번째. 빈티지 패브릭
열두 살에 들어와 스물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 한결같은 제 방의 가구들은 바뀐 적이 거의 없어요. 단순히 공부를 위해 마련되었던 컴퓨터 책상과 읽어야 하는 필독서들이 꽂혀있던 책장, 작은 싱글 침대와 옷장이 있던 그저 잠을 자고 공부하기 위한 공간은어느새 문구와 책 그리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의 작은 서재 겸 침실이 되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꾸며주셨던 취향을 벗어나 이제는 나만의 온전한 ‘방’을 만들기 위해 어울리는 소품들을 배치하며 아늑한 무드를 완성한 제 방의 페이보릿띵스를 소개하려해요. 다양한 패턴의 패브릭!
영감이 떠오를만한 환경을 위해선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하고, 이따금 신선한 것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끔 작은 소품들의 배치나 인테리어를 조금씩 바꾸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수면장애가 심해서 어두운 환경을 위해 짙은 회색의 암막커튼을 설치했었는데 잘 때 빛 없이 깜깜 해지는 건 좋지만 몇 년째 같은 커튼을 쓰고 있다 보니 환기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최근에 커튼을 새로 구입해 방 분위기를 바꿔주었죠.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가는 방을 보면서 창문을 가리는 커튼을 바꿔달면 전체적인 방의 분위기가 바뀔 것 같아 몇 개월 동안 고민하며 마음에 드는 패브릭을 골랐어요. 아무래도 봄이다 보니 플라워 패턴이 마음에 끌리더라고요. 이월과 삼월에 한 번씩 커튼을 구입했어요. 하나는 얼룩진 벽지를 가리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창문을 가리기 위해 암막커튼 사이에 포인트 커튼으로.
커튼의 용도는 본디 무언가를 ‘가리기 위해’ 설치하는 것으로 보통 창이나 문에 달아 햇볕을 가리고, 사생활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공연의 경우엔 공연 시작 전 무대를 가리고 있는 가림막의 용도로 쓰이기도 하고. 제 방에 달게 된 커튼은 방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설치한 것이지만. 방에도 상처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몸에도 자라나며 생긴 상처, 흉터가 있듯이 방에도 벽지가 찢기거나, 얼룩지거나, 방문이나 문지방이 닳아서 시트지가 벗겨진다거나. 자잘한 상처들이 생겨나며 방의 세월을 실감하게 만들더라고요. 이 방과 오랜 시간 함께했구나, 라는 실감.
십여 년 넘는 시간 동안 제 방에게도 많은 상처들이 생겼어요. 문지방은 다 까졌고, 장판 부분이 들떠서 콘크리트 부분이 살짝 보이기도 하고, 포스터를 오래 붙였다가 떼어낸 벽지 부분만 색이 바래지 않아 이따금 예전에 아이돌 포스터를 붙였었지, 라는 기억이 떠오르고, 구멍을 뚫어 행거를 걸었다가 떼어낸 자리엔 큰 흉터들이 남아있어요.
윗집의 누수로 인해 벽지가 얼룩진 부분도 있고, 전체적으로는 빛이 바래지고, 습기가 많은 쪽엔 곰팡이도 펴서 없애느라 애도 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 아니면 책상에 앉아있기에 벽을 잘 쳐다보진 않았지만 애정 하는 것들로 방을 꾸며가면서 벽이 가장 큰 문제였거든요. 새로 도배를 할까 했지만 옷장과 책장 그리고 침대까지 큰 가구들이 많아서 처음엔 얼룩진 벽만 가려보자, 라는 생각으로 빈티지스러운 옐로우 컬러의 패브릭을 구매했어요. 그랬더니 새 벽지를 바른 것 마냥 방이 화사해졌어요.
방의 상처를 감싸 안은 패브릭으로 인해 감쪽같이 미워진 부분은 사라져서 지금은 방구석의 포토존을 어떻게 만들어둘까 고민하며 지내고 있어요.
방에게도 상처가 있듯이 저마다에게도 감추고 싶은 비밀이나 상처가 있겠죠. 저에게는 팔목 안쪽에 오래된 흉터가 하나 있어요. 막 대학교 사 학년 무렵 지인의 가게에서 짧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생긴 흉터인데 갈빗집 아르바이트였어요. 손님이 오시면 자리를 안내하고, 밑반찬을 서빙하고, 주문을 받고, 벨이 울리면 미리 기억해 둔 테이블 배치도를 되뇌며 필요한 게 있는지 찾아가고, 불판을 갈고, 고기를 자르고 , 손님이 가시면 뒷정리를 하고, 가끔은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도 하고.
솔직히 홀이 엄청 붐비던 유명한 가게는 아니었기에 나름대로 다섯 시간씩 하던 그 저녁의 아르바이트는 제게도 경험이었어요. 연탄이었는지 숯불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어쨌든 불과 가까이하는 일이기에 불판을 갈을 때면 언제나 긴장하면서 조심스레 처리했어요. 손님이 다칠 수도, 혹은 제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하루는 불판을 갈고 있는데 술에 좀 취한 것 같은 손님이 본인이 해주겠다며 저를 밀면서 불판 집게를 잡으려 했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불판이 팔목 안쪽에 데이는 사고가 생겼었어요.
찰나의 순간에 여태 불에 달궈져 있던 불판이 제 팔목에 닿고 손님들이 놀라고 저는 더 놀랐어요. 처음엔 따끔거려서 그냥 물수건으로 감싸고 휴식공간에 있었는데 경황도 없고,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판단도 서지 않던 때였어요. 그 상태로 화기를 뺀다고 그저 물수건을 팔목에 감고 계속 일을 했고 집에 가서야 일하다가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죠.
생각보다 큰 상흔이었어요. 사오 센티 정도의 상흔이 대각선으로 손목 아래 한 뼘 밑부분에 길게 그어져서 점점 피부 가장자리가 일그러졌어요. 아빠가 소독을 해주고, 약을 발라주고 그다음 날은 드레싱을 받으러 피부과에 가면서 많이 속상했어요. 이대로 흉터가 생기면 어쩌지. 누가 보면 정말 나쁜 마음을 먹었다고 오해하기 좋은 위치에 난 화상. 다행히 가을인가 겨울쯤이라 한동안 팔에 드레싱 후 붕대를 감고 다녔어도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어요. 햇볕에 닿을 일도 없어서 열심히 관리했는데 처음엔 상처가 작은 실선이더니 이내 가장자리 피부들까지 일그러져서 넓게 긴 타원형으로 흉이 질 것 같았어요. 그때 바로 병원이나 약국부터 가지 않고 참고 일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워러 팔목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그때의 제가 한심하다고 느꼈고요.
길고 짙은 흉터라서 여름에도 얇은 카디건을 입고 다니는 일이 잦았고 흉터 연고제를 꼬박꼬박 발랐었어요. 결국 흉터도 제 몸의 일부가 되어서 받아들이긴 했지만 몇 달간 열심히 관리하며 피부 회복이 되면서 화상 자국이 다 지고 / 모양의 긴 흉터만 남았어요. 흉터는 꽤 오래가서 나중엔 잊을만한 기억이다가도 팔목 쪽을 보면 떠오르곤 할 정도였는데 사오 년이 지난 지금은 다행히 많이 옅어져서 아주 자세히 보지 않는 한 흉터 자국은 알아차릴 수 없더라고요.
그런가 하면 폭언을 들어서 정신적으로 상처 받은 기억들도 있어요.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독처럼 내뱉고는 어찌 그리 난도질도 잘해놓는 건지. 타인에게 이럴정도면 본인 가족에게도 그렇게 하겠다 싶은 게 눈에 보이던 사람들. 폭언으로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도 않아요. 지금이야 학교에서 체벌이나 폭언 등이 금지된 걸로 알고 있지만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선생님들이 막말을 하는 상황도 정말 많았거든요. 그 이전엔 더 심했을 테죠.
제가 남들보다 예민한 건지 솔직히 제 삶의 기준은 저이기 때문에 예민도나 받아들이는 충격의 정도가 얼마나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제 경우엔 그런 정신적인 상처들을 극복하고 싶어서 정신건강의학과의 상담에 기대어 약을 먹으며 치료했어요.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아마 속은 곪아있을 거예요. 슬프지만 의심치 않아요. 제 안은 그렇게 엉망인 채로 가끔은 꾸역꾸역 살아가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저 괜찮다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냥 살아간다고 느끼는 때도 있거든요. 각자의 사연들은 다르겠지만 저마다 자신의 상처가 가장 크게 느껴질 거예요. 그렇게 감추고 싶은 기억들처럼, 방의 흉터들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분위기 전환 겸 사생활 보호를 위해 달게 된 새 패브릭이 이번에 소개할 저의 페이보릿 띵스입니다.
저는 제 우울한 감성도 사랑해요. 커트 보네트라는 작가는 우울하지 않으면 진지한 작가가 될 수 없다,라고 했대요. 그 말을 어디서 읽은 순간부터 우울함에게도 애정을 가져보기로 했어요. 중증도 우울 에피소드 판정을 받고 그에 맞게 약을 처방받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매일 행복한 순간은 존재하니까요. 글을 쓰는 순간도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막 자판을 두들기다 보면 그저 그 시간이 행복하고 즐거워요.
보통 창문 옆에 침대를 두는 분들도 많지만 저처럼 책상이 이 위치에 있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가만히 글을 쓰다가 하늘을 보면 푸른 하늘에 구름이 뭉게뭉게 떠있어서 얼마나 느리게 구름이 흘러가는지 보기도 하고, 아직은 맞은편 부지엔 새로운 고층건물이 들어서기 전이라 평지와도 같은 저 아래를 굽어보기도 해요. 요즈음은 주말에 외출을 안 하고 거의 집에만 있는데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창 밖을 보려고 커튼을 걷을 때도, 밤엔 작은 큐브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고요하도록 커튼을 드리울 때도.
너무 집에만 있다 보니 사놓고 읽지 않던 책도 꺼내서 읽어보고, 노트에 일기도 쓰고, 문구 박스에서 마스킹 테이프나 스티커를 꺼내서 이것저것 꾸미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자필로 단상을 적기도 해요. 커튼도 바꾸고 나니 괜히 창문 볼 때마다 기분도 좋아지는 거 있죠. 참 사소한 거 하나에 서운하고 소박한 행복을 느끼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온종일 오르락내리락하다가도 집에만 오면 작은 행복들로 촘촘히 짜인 방 안에서 안정을 찾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기만의 방은 상처를 감싸안는 힐링의 장소가 될 수 도 있다고 생각해요.
일 년이면 삼백육십오일. 하루는 스물네시간. 한 시간은 육십 분. 일분은 육십 초. 초단위로 줄어들수록 시간의 소중함이 여실히 느껴져요. 일 년이라는 시간은 실은 삼백육십오일이고 오십이만 오천육백 분의 시간이며 삼천백오십삼만 육천 초의 시간으로 쪼개지더라고요. (제가 잘 계산한 게 맞겠죠..?) 요즘은 사람 많은 곳이나 병원도 자제하는 중이라서 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도 미뤘는데 기분이 좋다가도 금방 우울해지고 즐겁다가도 지치고 행복하다가도 초라해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찾게 되고, 더 애착을 갖고 방을 꾸며가는 것 같아요. 이미 난 상흔을 억지로 지울 수는 없지만 방의 상처도, 저의 상처들도 다 감싸안는 이 공간에서 오늘도 저는 살아가는 중이에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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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를 시작한 지 오 년쯤 된 것 같은데 삼천 삼백 명의 구독자분들이 계셔서 오늘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어요. 읽어주고 공감해주시는 분들 덕에 기록의 소중함을, 그리고 글 쓰는 행복을 얻고 있습니다. 언제나 귀한 시간을 내어 완독 해주시는 분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