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 남짓한 제 방 안에서 가장 애정 하는 것을 소개합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편지를 쓰고, 받아본 경험들이 적어도 한 번은 있을 거예요. 의무적으로 했던 학교의 수행평가나 숙제였을 수도 있고, 생일날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일 수도 있고, 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밤새 적은 내용이 담겨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 경우엔 초등학교 때부터 받아온 많은 편지들은 제 방 책상의 두 번째 서랍 안에 고이 보관되어 있어요.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진 초등학교 시절의 단짝 친구들, 삼 학년 방학 숙제로 담임선생님과 주고받았던 편지, 학원 친구들, 롤링페이퍼, 친구들과 가끔 주고받았던 생일 편지 , 지난날의 연애편지 등...
사실 꺼내보고 읽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대로 놔두고 그저 보관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이제 와서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 읽어보기엔 그때의 감정이나 기억이 희뿌연 하게 아른거릴 뿐이라서. 그저 제 책상 안에 일부였던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보관 중이에요.
생각해보면 방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배치를 자주 바꾸는 편인데 편지들 만큼은 건든 적이 없었어요. 그저 받으면 언제나 책상 두 번째 서랍에 보관할 뿐.
갑자기 떠오르는 상대를 위해서 편지지를 펼치고, 펜을 들게 되는 마음을 그대도 알겠죠. 말랑말랑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저며오는 기분일 거예요. 때론 벅차오르기도 하고 한없이 너그러워지며 애잔해지는 솔직한 그 순간의 감정.
그 마음을 토해내듯 편지 위에 꼭꼭 눌러 담다 보면 두서없더라도 편지지는 어느새 한 장을 넘어가기도 하더라고요. 그 감정을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어 져서 편지를 쓰던 때가 있었어요.
친구든 연인이든 부모님이든 상대는 언제나 내가 아끼는 사람들. 부끄러워서 다 적지 못한 마음도 존재하고,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달했던 마음도 펜 끝에서 잉크로 퍼져나갔어요.
가끔은 제가 썼던 편지를 다 모아서 받아보고 싶다, 는 생각도 하곤 해요. 받은 편지들은 쓴 상대의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지만 제가 쓴 편지엔 그때의 제 마음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아쉽게도 편지의 단점을 굳이 고르자면 내 손을 떠나가면 내용을 되짚어 볼 수 없다는 것이겠네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적어 내려간 글인지 그 당시의 나는 어땠는지가 편지엔 솔직하게 담겨있을 텐데요. 편지를 자주 쓰던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써봤다,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편지를 많이 적었던 두 해가 있는데 첫째는 단거리에서 장거리 연애로 넘어가기 시작했던 직후였어요. 멀리 있었기 때문에 실은, 예단할 수 없는 미래였지만 불안한 마음도 있었고 진솔하게 왜곡되지 않은 마음을 가감 없이 전달할 방법이 말 외엔 편지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텍스트를 통해 메신저로 보내는 이야기도 상대방에게 보내는 시그널이겠지만, 아날로그 감성이 좋기 때문에 굳이 손편지를 택했거든요. 은근히 편지에 대한 답장도 기대하게 됐었고요.
그 전엔 군대에 간 동생을 위해 펜을 들었었고요. 언제나 한두 장씩 길게 집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동생에게도 답장이 오곤 했어요. 한 번은 동생에게 물어보니 당시 받았던 편지들을 다 보관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쑥스러워서 제가 쓴 내용을 다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동생 말로는 군대 안에서 편지들이 큰 힘이 되었다고 했어요. 은근히 생색도 냈죠. 나 같은 누나가 어디 있겠냐고.
요즘에는 편지를 쓰기보단 갑자기 가슴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감정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지면 카카오톡을 켜고 살짝 장문에 버금가는 글을 남기곤 해요. 갈수록 편지를 남기는 일은 드물지만, 어쨌든 그 짧은 글 조차도 마음이 담긴 안부이니까요. 예컨대, 지난번에 선물로 받은 식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감사히 먹은 아이스크림 덕에 당을 충전해서 힘이 났노라고, 새 출발을 하려는 지인에게 진심의 감사와 응원을 해주고 싶어서.
문득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길게 글을 남겼던 어느 해가 떠올랐어요. 아이유의 밤 편지처럼 오로지 제 감정에 충실해서 진실되게 표현했던 그때의 마음. 그 순간의 다짐들. 문득, 연필로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쓰고 싶어 졌어요.
여름이 다가오면서 공황과 불안이 간헐적으로 심해져 밤마다 앓고 있지만 하루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는 무너질지도 몰라요. 무너지지 않고, 우울한 감정에 마냥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뭐라도 즐거울 거리를, 나를 위한 행복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려는 제게 편지는 시간의 일부이자 기록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모여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한 한 때로 기억될 거예요.
이제는 차마 닿을 수 없는 마음들이라 해도 정말이지 우리에게 남은 건 사랑 그리고 일상이 전부일지도 모르겠어요.
굳이 연필로 적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한 줄의 엽편을 적어가며 그렇게라도 나름대로 편지를 혹은 팬레터를 부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 글 또한 제 글을 읽어주실 어딘가의 독자분께 전하는 저의 팬레터라고 생각해주세요. 텍스트로도 지금 글을 쓰는 제 방의 따스한 온기가 옮겨가기를. fin